레이건의「영의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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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유럽지역 전역핵을「제로」의 수준으로 끌어내리자는「레이건」미대통령의 대소제안에 대한 이해당사국들의 반응은 예상대로다. 소련은「레이건」의 4개항 제안을 선전용이라고 가볍게 일축했다. 영·독·일같은 미국의 동맹국들은 평화지향적인『역사적 제안』이라고「레이건」안을 환영했다.
이정도로도「레이건」안의「쓸모의 정도」를 알만하다.
지난 10월 한달동안 서구에서는 85만명 정도가 참가한 반핵시위가 있었다. 유럽서 제한핵전쟁이가능하다는「레이건」발언과 나트의 시위적 핵사용이 가능하다는「헤이그」의 발언에 합의하고「레이건」「헤이그」를「전쟁광」으로 낙인찍는 시위들이었다. 「레이건」의 전역핵감축안이 첫째로 노린것은 서구의 이런 흉흉한 반핵·반미무드의 무마였다. 그런 점에서는「레이건」안의「쓸모」를 평가할만 하다.
그러나 소련과의 전역핵협상이라는 본질문제에 이르면「레이건」안이 어김없는 이상론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씻을수가 없다.
소련은 현재 유럽전역에 SS-20, SS-4, SS-5미사일을 배치해 놓고있다. 반면 미국은 83년에 가서야 크루즈미사일과 퍼싱Ⅱ미사일을 유럽전역에 배치할 예정이다.
「레이건」은 소련이 이미 배치한 미사일을 철수하면 미국은 퍼징Ⅱ와 크루즈미사일 배치계획을 백지화하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소련이 동의할 리가 없다. 유럽전역의 중·장거리핵미사일과 폭격기로 운반할 수 있는 핵탄두는바르샤바동맹이 2천4개, 나토가 7백68개를 보유하고 있는 실정인데 소련이 이런 핵의 우위를 선뜻포기할 것을 기대할 근거 없는 것이다.
소련은 오히려 유럽의 핵미사일을 지금의 수준에서 동결시키자는 엉뚱한 제안을 하고있다.
오는 3O일 제네바에서 열리는 중거리핵미사일 감축협상에서도 미·소간의 거리가 좁혀질 호재는 하나도 없다.「레이건」안이 그 자리서 정식으로 제안된다고해도 사정이 나아질 것같지는 않다.
이렇게보면 결국「레이건」행정부가 선택할 길은 일차적으로는 미·소핵전력의 균형, 그다음으로는 대목우위의 확보일수 밖에없을 것같다.
그럴 경우를 예상할 때「레이건」의 4개항 제안은 소련의 핵의 위협을 세계여론, 특히 서구의 여론앞에 부각시켜 미·서구간의 전략상의 협력을 강화하고 핵미사일협상을 거부하는 소련의 호전적인 정책을「폭로 라는 정치적인 효과는 적지가 않을 것이다.「레이건」이 취임이래 안고있는대소강경론자의 낙인, 군비증강론자의 인상이 이번 제안으로 다소나마 씻길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솔직이 말해서「레이건」안 자체만을 가지고는 지구상 모든 사람들이 갈망하는 핵강대국간의 현실적인 군비축소가 실현되리라고 보지않는다.
다만 소련은「레이건」안을 무조건반대만 하지말고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미국은「레이전」안의 비현실적인 측면을 보완하는 노력이 있으면「레이건」의 4개항제안이「좋은 시작」으로서의 쓸모를 발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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