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한국은 원전 정비기술 수출국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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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임순형
한전KPS(주) 기술개발실장

엄청난 재앙에 묻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후쿠시마 원전의 뒷얘기가 있다. 원전 운전원과 정비원 중엔 원전 인근에 거주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쓰나미가 몰려와 많은 직원의 가족들이 휩쓸려가는 상황에서 일부 직원들은 도망을 갔지만, 원전을 안전하게 정지시키기 위해 많은 직원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제자리를 지켰다.

 발전소 폭발 후에도 방사능에 오염되어 죽을지도 모를 상황에서도 사고 수습을 하기 위해 발전소로 향했던 사람도 퇴직 직원들이었다. 이처럼 원전 종사자들은 수많은 교육을 통해 사명감, 의무감이 남다르다고 생각된다.

 예전 울진원전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민간업체에서 납품한 설비에서 진동이 발생하여 제작사의 엔지니어가 하자 점검 차 격납용기에 들어갔다. 이 엔지니어는 음향식 방사선측정기가 정상 동작하고 있다는 신호음을 방사선에 노출되어 소리가 나는 것으로 잘못 알고 다음날 출근을 하지 않았다. 그날 민간업체 직원들의 작업과 우리 직원들의 작업을 감독하기 위해 격납건물에 들어간 내가 받은 방사선량은 엑스레이 촬영할 때의 100분의 1 정도였다.

 현재 대한민국의 원자력 발전소 정비를 전담하고 있는 한전KPS의 원전 정비기술 수준은 선진국 대비 96.53%이다. 원전 정비업무는 특성상 결함이 발생된 후 이를 정비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정비기술을 100%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 없다. 우리나라 또한 개발되지 못한 정비기술은 수입을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원전 정비기술은 끊임없는 노력으로 1993년부터 수출을 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해 9개국, 162건에 이른다.

 하지만 국내 원전산업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은 극도로 예민해져 있다. 안전성 걱정 때문이다.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의 후속 조치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고, 우리나라 원전산업계는 인적재해인 품질문서 위조로 인해 홍역을 치르고 있다.

 물론 원자력이 불신 받는 사태를 초래한 단초를 제공한 것은 원자력 종사자들의 책임이 당연하다. 더욱이 비리에 연루된 자들은 엄하게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원전마피아’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면서 원자력 발전에 종사하는 사람들 모두가 마치 비리의 온상처럼 치부되는 것은 지나치다. 대다수의 원전종사자들은 정직하고 안전한 원자력 문화 속에서 근무를 하며 본인의 직업을 자랑스럽게 여겨왔다.

 외국 기술로 세워진 고리 원전1호기가 1978년 4월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2009년 12월 UAE원전수출 계약을 하기까기 30여년 이 흘렀다. 원전기술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이 원전기술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는 데는 원전종사자들의 노력과 열정이 큰 역할을 했다. 이제는 원전 종사자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기 보다는 지금 이 시간에도 묵묵히 원전을 안전하게 지키고 있는 그들을 격려를 해줘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원전 종사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국민들의 애정 어린 시선이 아닌가 한다.

임순형 한전KPS(주) 기술개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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