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50년 전 군대 폭행치사 가해자 상대 구상권 소송 패소

중앙일보

입력

정부가 50년 전 군대 내 폭행치사 사건의 가해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했으나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5부(부장 장준현)는 정부가 안모(71)씨를 상대로 "폭행치사 피해자에게 대신 지급해준 배상금을 상환하라"며 낸 구상금 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고 3일 밝혔다.

사건의 발단은 50년 전으로 거슬러간다. 1965년 9월 당시 안씨는 논산훈련소 선임하사였다. 안씨는 들어온지 3일째인 훈련병 고모씨의 군기를 바로 잡겠다는 명목으로 고씨를 구타했고, 가슴 부위를 잘못 맞은 안씨는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당시 부대는 이 사실을 숨기기로 하고, 고씨의 유족들에게 "고씨가 잠을 자던 중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했다"고 알렸다. 당시 안씨는 헌병대에 구속됐으나 불기소 처분됐다. 묻힐 것 같던 진실은 고씨의 가족들이 2006년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진정을 하면서 풀린다. 위원회 조사 결과 고씨가 구타의 의해 사망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고씨의 가족은 정부를 상대로 2007년 손해배상소송을 냈고, 2011년 정부로부터 2억2000만원 상당의 배상금을 받았다.

이후 정부는 "안씨가 피해자를 고의로 살해하거나 중대 과실로 사망케 했고, 손해배상금을 정부가 대신 지급했기 때문에 안씨는 이를 정부에 지급해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국가배상법 제2조 제2항은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는 경우에 고의 또는 중대 과실이 있으면 국가와 지자체는 그 공무원에게 구상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은 국가가 안씨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안씨에게 구타를 당해다가 가슴 부위를 맞아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고 인정하면서도 "구타가 이뤄진 방법이나 부위, 정도 등에 대한 구체적 자료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사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폭행하는 등의 고의나 중대 과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