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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당 대표 자리 위해 배 평형수라도 뺄 기세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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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박영선

“짐을 내려놓으려 합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2일 오전 사퇴했다. 당 소속의원 전원에게 직접 쓴 사퇴서를 e메일로 보냈다. 헌정 사상 첫 여성 원내대표에 당선된 지 147일 만에 스스로 적은 대로 “폭풍의 언덕”에서 내려왔다.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 등 연이은 선거 패배로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가 사퇴하는 바람에 박 원내대표는 한때 ‘국민공감혁신위원장(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라는 무거운 짐을 져야 했다. 결과적으로 이 짐이 ‘독배(毒杯)’였다. 그는 폭풍 같았던 5개월을 A4 용지 1장에 담았다.

 박 원내대표는 “책임이란 단어에 묶여 소신도, 체면도, 자존심도 다 버리고 걸어온 힘든 시간이었다”며 “세월호 비극의 한복판인 5월 8일 원내대표로 선출되던 순간부터 예감했던 일”이라고 했다. 사퇴의 직접적 계기가 됐던 세월호법 협상에 대한 소회도 담았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법’을 만들기 위해 벌인 협상을 일단락하며 드리고 싶던 수많은 얘기 중 아주 작은 조각을 말씀드리고 싶다. 세월호법만은 반드시 결실을 맺어야 한다고 믿었다. 진상규명이 가능한 법을 빨리 제정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협상을 끌고 왔다. 협상 과정에서 받은 비난 중 상당 부분에 대해 드릴 말씀도 있지만 그저 다시 한 번 용서를 구한다.”

 하지만 글 속엔 가시도 담겼다. 박 원내대표는 “흔들리는 배 위에서 활을 들고 협상이라는 씨름을 벌였다”며 “직업적 당 대표를 위해서라면 배의 평형수라도 빼버릴 것 같은 움직임과 극단적 주장이 요동쳤다”고 주장했다. 자신을 끊임없이 흔들어온 당 내 강경파들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는 이런 흔들기의 원인으로 계파 갈등을 지목했다. 그러면서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한 우리 당이 겪고 있는 고통은 치유되기 힘들다”고 했다.

 박 원내대표는 지난달 29일 세월호법 재협상이 시작되면서 사퇴서를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고 한다. 9·30 합의안을 만들어낸 뒤 하루 뒤인 1일 안산의 유가족들을 위로한 뒤 의원회관에서 문희상 비대위원장을 만났다. 오후 5시쯤이었다. 이 자리에서 “내일부터 나오지 않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사퇴 e메일이 공개된 뒤 박 원내대표는 비대위원회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상임위원회 회의도 불참했다. 오전 11시 국회 새정치민주연합 원내회의실에선 ‘국감상황실’ 현판식이 열렸지만 원내대표실에선 박 원내대표의 짐이 나왔다. 박스 20여 개 분량이었다.

 박 원내대표와 세월호법 협상을 해온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는 “마음이 많이 아프다. 걱정도 된다”며 협상 파트너로서 착잡한 심경을 밝혔다. 그는 기자들에게 “인지상정이 아니겠느냐. 그럼에도 세월호법은 여야가 아닌 국민 전체의 문제인 만큼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강태화·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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