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 빈 지자체, 18년 전 주차 위반 과태료 독촉장 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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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대전시 중구에 사는 김모(53)씨는 지난달 초 주차위반 과태료 독촉고지서를 받았다. 18년 전인 1996년 3월 옛 충남도청(대전시 중구 선화동) 뒤편에서 주차위반한 사실이 적발됐는데 과태료를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씨는 “하도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받은 체납 독촉고지서는 대전시 중구가 보낸 18만5000여 건 중 하나다. 대전시 중구는 91년부터 최근까지 23년간 과태료 체납 기록을 모두 뒤져 독촉고지서를 발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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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시 남구에선 요즘 한밤에 특수장비를 장착한 승합차가 주택가 골목길과 아파트 단지 등을 돌아다닌다. 주차된 차량 번호판을 스스로 읽어서는 즉석에서 주정차 과태료 체납 여부를 알려주는 장치다. 두 번 이상 과태료를 안 낸 것으로 확인되면 공무원들이 그 자리에서 번호판을 뗀다. 번호판은 밀린 과태료를 내야 돌려준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체납 과태료 걷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무상급식·기초연금 등 갈수록 쓸 돈이 많아지면서 곳간이 비어가자 한 푼이라도 수입을 더 늘리려 는 것이다. 체납 세금은 거둬도 국가와 광역시·도(광역자치단체), 시·군·구(기초자치단체)가 나눠가져야 하지만 주정차 위반이나 쓰레기 불법 투기 등에 붙는 과태료는 온전히 해당 지자체 몫이어서 지자체들은 과태료 걷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8월 말 기준 누적 과태료 체납액은 경기도 7038억원, 인천 1833억원, 부산 1439억원에 이른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매년 3500억~4000억원의 과태료 체납액이 계속 쌓이는 실정이다.

 체납 과태료를 걷기 위해 대구시 서구·남구·수성구는 신용정보회사와 손을 잡았다. 신용정보회사가 과태료 100만원 이상 체납자의 계좌를 파악한 뒤 압류 절차를 밟아 돈을 받아오면 수수료를 지급하는 식이다. 지난달 체납 과태료 독촉고지서를 일괄 발송한 대전시 중구는 이달 중순 ‘전자예금 압류시스템’을 가동할 예정이다. 체납자의 계좌 등을 파악해 통장 거래와 신용카드 사용을 못하도록 자동으로 막는 시스템이다. 충북 청주시는 지난 8월부터 과태료 체납자의 예금을 압류하기 시작했다. 체납액이 100만원 이상일 경우 통장 거래는 가능하지만 체납 금액만큼은 인출할 수 없도록 했다.

 과태료 체납 차량의 ‘번호판 떼기’ 또한 지자체들이 선호하는 방법 중 하나다. 청주시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을 ‘번호판 떼기의 날’로 정하고 집중 적발하고 있다. 광주광역시는 곧 시청 안에 번호판 떼기 전담조직을 설치할 계획이다. 체납 과태료를 잘 걷어오는 공무원에게 당근을 제시하는 곳도 있다. 대전시는 최고 연간 840만원까지, 세종시는 200만원까지 포상금을 지급한다.

 지자체가 이처럼 체납 과태료 걷기에 나서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다. 대전시 중구청 주은영 교통과장은 “나만 억울하게 됐다며 버티는 경우가 적잖아 실제 징수율은 30%를 밑돈다”며 “체납 과태료를 거두는 데도 세금이 든다는 점을 인식하고 밀린 돈을 스스로 내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과태료에 대한 것은 아니지만 서울 강남구는 1일 ‘세금 체납 징수 전담반’을 설치했다. 채권추심 경력자 2명을 계약직으로 신규 채용해 전담반을 꾸렸다. 역시 비어가는 곳간을 채워보자는 노력의 하나다.

  안전행정부도 올 4월 ‘지방세입정보과’라는 체납 과태료 등 세외수입 전담 조직을 꾸렸다. 송경주 지방세입정보과장은 “체납 과태료 징수는 각종 복지정책을 차질 없이 펼치기 위해 꼭 필요하다”며 “밀린 과태료를 꼭 내야 한다는 인식을 국민에게 심기 위해 매년 두 차례 체납액 일제 정비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전=신진호 기자,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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