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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수퍼 달러' 의 역습 … 요동치는 환율·유가·금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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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수퍼 달러’가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 매도로 코스피 2000선이 무너지고, 환율·금리·유가 등 3대 가격변수도 요동치고 있다. 금리는 떨어지고 국제 유가는 급락하고 있다. ‘수퍼 달러’와 ‘엔저(달러화에 대한 엔화 가치 약세)’ 사이에 낀 한국경제는 진퇴양난이다. 변곡점에 선 환율·금리·유가의 움직임과 영향을 분석했다.

초고속 엔저 충격 … 코스피는 2000선 무너져
강한 달러 장기화 가능성에 외국인들 국내주식 매도 행렬
엔화값 6년 만에 1달러=110엔 대
일본과 경쟁 수출기업 초비상

달러 오름세가 거침이 없다. 유로·엔 등 6개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 지난달 30일 86포인트를 넘어서며 4년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달러인덱스 수치가 높아질수록 주요통화에 비해 달러 값이 오르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달러당 유로화 가치는 11주 연속 떨어졌다. 1999년 유로화가 탄생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수퍼 달러’는 세계 곳곳에서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특히 한국·대만이 큰 충격을 받았다. 1일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 값은 전날보다 7.45원 내린 1062.65원에 거래를 마쳤다. 원화 값이 1060원대로 떨어진 건 지난 3월 말(1064.7원) 이후 6개월 만이다. 코스피는 2000선 아래로 주저앉았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기부양책을 내놓고 한국은행이 금리를 내리기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달러가 강세로 돌아서자 지난달부터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팔고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게다가 달러 강세는 일시적 현상이 아닐 수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돈을 풀던 경기부양책(양적완화)은 이번 달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조기 금리인상론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두 가지 모두 달러 강세 요인이다. 본지는 국내 주요 증권사 6곳에 달러화 강세에 대한 전망을 물었다. 그 결과 절반이 넘는 4곳(신한·우리·하나대투·한국)이 ‘수퍼 달러’가 장기적인 추세가 될 거라고 내다봤다. 우리투자증권 이창목 리서치센터장은 “환율은 기본적으로 그 나라의 경제력을 반영한다. 미국이 세계 경기회복을 주도하고 있으니 달러 값은 오르는 게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국내 수출기업 입장에선 달러 강세가 나쁠 게 없다. 문제는 일본 엔화가 달러화에 대해 원화보다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는데 있다. 1일 일본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엔화 값이 한때 110엔까지 떨어졌다. 이러다 보니 원·엔 환율은 100엔당 960원대로 주저앉았다. 2월 초 원·엔 환율이 1070원대였으니 7개월 만에 100원 넘게 떨어진 셈이다. 삼성증권 이승훈 연구원은 “돈을 계속 풀고 있는 일본과 이제 돈줄을 조이는 미국 간의 통화정책 차이가 엔화 약세의 주요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엔화 값 변동은 국내 기업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현대차·도요타 같은 두 나라 대표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엔화 값이 떨어지면 일본기업은 가격경쟁력 면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

 이번 설문에 응한 증권사 6곳 중 5곳은 올 연말 원·엔 환율을 930~960원대로 내다봤다. 삼성증권은 880원대까지 내려갈 것으로 예측했다. 엔화 약세가 진정될 거라고 본 전문가는 없다는 뜻이다. KDB대우증권 서대일 수석연구원은 “내년 말에는 달러당 엔화 값이 120엔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지난해 말 엔저현상이 한창일 때 엔화 값이 달러당 105엔이었다. 일본과 경쟁해야 하는 국내기업으로선 갈수록 태산인 셈이다.

 그러나 한국이 요동치는 환율 흐름을 잘 이겨낼 것이란 분석도 있다. 대신증권 오승훈 투자전략팀장은 “지난해 미국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 이후 신흥국 주가가 크게 떨어졌을 때 한국을 비롯한 말레이시아, 대만, 인도, 폴란드는 선방했다. 대부분 외환보유액이 풍부하며 경상수지 흑자국이었다”고 말했다. 오 팀장은 “이번에도 한국처럼 달러 강세에 덜 민감하며 미국 긴축 정책을 잘 버틸 수 있는 중위험·중수익 국가의 차별적인 매력이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검토되는 방안은 저금리 외화대출이나 정책자금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엔저라는 흐름을 직접 바꾸는 것은 한계가 있다. 엔저 활용론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최경환 부총리는 지난달 30일 기업인과의 간담회에서 “엔저로 인해 수출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기자재 가격이 싸졌으니 설비투자 확대 등 기회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원배·염지현·이한길 기자

2 하루 새 3.6% … 1배럴=40달러 성급한 전망도
달러 강세에 미국산 원유 증산
국제 경기 부진에 수요 안 늘어

요즘 국제 원유시장에선 생소한 물음이 나돌고 있다. “원유 가격이 얼마까지 떨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다. 기름값 고공행진 와중엔 거의 제기되지 않았던 의문이다. 하지만 금융전문 매체인 마켓워치는 “원유시장 참여자들의 눈이 위가 아닌 아래를 향하고 있다”고 지난달 말(현지시간)에 전했다.

 최근 국제 원유가격이 많이 떨어진 탓이다. 30일(현지시간)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91.16달러까지 밀렸다. 하루 전보다는 3.41달러(3.6%) 낮다. 하루 새 이렇게 가격이 많이 떨어지기는 2012년 11월7일 이후 처음이다. 영국 런던시장에선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도 배럴당 2.4 달러(2.5%) 정도 하락해 94달러 대에서 거래됐다.

 로이터 통신 등은 이날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달러 강세 흐름에다 원유의 공급이 수요보다 많을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국제 원유 가격을 끌어내리고 있다”고 했다. 최근 달러 가격은 블룸버그 달러지수를 기준으로 7월1일 이후 석 달 새에 약 7% 정도 올랐다.

 원유 공급은 전방위적으로 늘어날 조짐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9월 산유량은 리비아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회원국의 생산량 증가에 힘입어 하루 평균 3096만 배럴에 이르렀다. 8월에는 하루 평균 3015만 배럴이었다. 여기에다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될 것이란 전망마저 제기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달 29일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를 근거로 미국이 올 10월이나 11월에 사우디보다 더 많은 원유를 생산할 것으로 예측했다. 실제 그렇게 되면 1991년 이후 23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이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된다.

 미국은 세계 최대 에너지 소비국이다. 이런 미국이 최대 산유국이 되면 국제 원유가격은 90년대와 같은 죽음의 골짜기(장기 저유가 국면)를 지나야할지도 모른다. CBS 마켓워치는 “조금은 성급할 수 있지만 원유 가격이 배럴당 40달러 선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다”고 전했다.

강남규 기자

3 저성장·저물가 … 기준금리 추가인하 가능성
성장률·물가 전망치 점점 낮아져
“10월이든 11월이든 금리 내릴 것”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존 3.8%에서 0.1~0.2%포인트 낮은 3.6~3.7%로 수정하는 안이다. 한은 관계자는 1일 “세월호 사고 여파로 올 2분기(4~6월) 경제성장률이 속보치로 집계한 0.6%(전기 대비)보다 0.1%포인트 낮은 0.5%로 나왔다. 그 부분을 연간 성장 전망에 반영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1.9%로 봤던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도 0.2~0.3%포인트가량 내리는 안도 논의되고 있다.

 시장에서 예상했던 수순이다. 한은의 ‘3.8% 성장, 1.9% 물가’ 전망은 다른 기관과 견줘 높은 편이다.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성장률을 3.7%로 내다보고 있다. 그마저도 달성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수퍼 달러’의 역습이 한국경제를 뒤흔들면서다. 이날 통계청이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지수도 1년 전과 비교해 1.1% 오르는데 그쳤다. 2012년 10월(2.1%) 이후 23개월 연속으로 2% 아래에 머물고 있다.

 기준금리 추가 인하 압력이 점점 커지는 셈이다. 금리 동결을 결정했던 지난달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몇몇 위원이 추가 인하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발언을 했다. 지난달 30일 한은이 공개한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한 위원은 “한국 경제의 저물가 장기화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며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하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해방 금통위원은 아예 “선제적인 정책 대응을 위해서라면 연속적인 금리 인하가 더욱 효과적”이라며 ‘금리 인하’에 표를 던지기도 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두고 보겠다”며 금리 방향에 대해 중립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은 이미 ‘10월이든 11월이든 기준금리가 내려갈 것’이라는데 무게를 두고 움직이는 중이다. 이날 국고채 3년물 금리(수익률)는 기준금리(2.25%)보다 더 낮은 2.22%로 내려갔다. 한은은 오는 15일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통위를 열고 수정 경제전망도 발표한다.

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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