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애플 탈세조사 그 이후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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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유럽연합(EU)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애플의 법인세 탈루 단서를 잡아냈다. 글로벌 기업들의 세(稅)테크를 겨냥한 한 판 싸움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애플이 아일랜드에서 법을 위반하고 법인세를 덜 낸 사실을 발견했다”며 “애플을 법원에 기소할 예정”이라고 29일 발표했다. EU 관계자는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과 통화에서 “애플이 아일랜드 정부와 협상해 불법적으로 세금을 내지 않은 점을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EU가 올 6월부터 석 달 동안 조사한 결과다.

애플이 벌금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글로벌 기업들은 각국 정부의 기소에 법정 밖 협상으로 대응하는 게 관행이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양쪽의 타협으로 애플이 벌금 수십억 달러를 무는 선에서 매듭지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라고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사실 애플은 미국?영국?프랑스 등 주요국의 표적이었다. 지난해 미 의회 조사에 따르면 애플이 아일랜드 같은 상대적으로 세율이 낮은 나라를 이용해 2000년 이후 13년 동안 미국 등에서 덜 낸 세금만도 700억 달러(약 73조원)에 이른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애플의 법인세 피하기는 아이폰과 닮은꼴”이라며 “기존 세금 피하기 기술을 종합해 막강한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평했다.

어떤 시스템일까. 해외 각지의 순이익을 한 곳에 모아 관리?운용을 방식이다. 그 정점이 네바다주의 자산운용사 브래번이다. 네바다주는 미국의 주 가운데 세율이 낮은 곳이다. 브래번이 하는 일은 각국 현지 법인 순이익을 법인세율이 낮은 쪽으로 모아 세금을 덜 내게 하는 것이다.

애플이 즐겨 활용한 곳이 바로 법인세율이 낮은 아일랜드다. 이 나라는 순이익의 속지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자기 나라에서 번 돈이 아니면 법인세를 물리지 않는다. NYT에 따르면 애플은 비상장 회사를 아일랜드에 설립해 영국 등에서 번 돈을 ‘체계적으로’ 흡수했다. 예컨대 애플의 영국 법인이 아일랜드 법인에 용역·서비스료 등의 명목으로 이익을 넘겨주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영국 법인은 이익이 줄어 세금을 적게 내거나 아예 내지 않는다. 이들 법인은 증시에 상장되지 않았기에 성가시게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로이터 통신은 “애플이 미국의 높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해외에서 번 순이익을 대부분 본사에 송금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다른 곳으로 돌린 규모만 544억 달러(올 3월 기준)에 이른다”고 전했다.

애플의 거대한 현찰은 스티브 잡스(1955~2011년)의 유훈이다. 그는 90년대 후반 애플 최고경영자(CEO)로 복귀한 뒤 부도위기에 몰렸다. 이때 트라우마(외상후증후군) 때문에 가능한 한 많은 현금자산을 보유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NYT는 “잡스의 현금 선호는 세금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졌다”며 “아이폰 성공 이후 급격히 불어난 현금 자산을 지키기 위해 자산운용사를 세워 지구적인 차원에서 현금 자원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전했다.

EU는 이런 애플을 면밀히 지켜보다가 마침내 액션을 취했다. 요즘 EU는 글로벌 로비?법률 회사들 사이에선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로 불린다. EU가 정한 법규나 결정이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을 바꿔놓을 수 있어서다. 미국마저도 EU의 법규 개정을 벤치마킹할 정도다. 미국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한스-파울 뷔르크너 글로벌 회장은 최근 본지와 인터뷰에서 “미국 로비?법률 회사들이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거대한 두 세력이 정면 충돌하면 불똥이 튀기 마련이다. 다른 글로벌 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들도 애플처럼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며‘세테크’를 해왔다. 그 방증이 바로 이들 기업이 해외에 비축해놓은 현찰 뭉치다. GE?MS?화이자?머크 등은 애플보다 더 많은 현찰을 해외에 묻어두고 있다. 미국 거대 기업 22곳이 해외에 묻어둔 현금자산이 1조9800억 달러(약 2060조원)에 이른다.

미국 정부가 애플의 방패막이로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블룸버그는 “미국 정부도 글로벌 기업들의 세테크를 비판해왔다“고 보도했다. 오히려 거들고 나설 가능성마저 엿보인다. 이 참에 글로벌 기업의 세테크에 철퇴를 내려 재정 적자를 덜기 위해서다. 글로벌 기업들의 경영 리스크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g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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