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 후계 '외부 회장, 내부 행장' 유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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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이 28일 백기를 들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며 금융위원회를 상대로 한 소송을 취하하고 KB금융지주 등기이사직에서도 물러나기로 했다. KB금융 차기 회장을 뽑기 위한 작업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임 전 회장은 금융위의 3개월 직무정지 제재에 반발하며 지난 16일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KB금융과 본인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며 버텼지만 12일 만에 투항한 셈이다. 검찰이 국민은행 주전산기 문제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데다 KB금융 이사회마저 등을 돌려 역부족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법률 대리인을 맡은 법무법인 화인 관계자는 “(임 전 회장이) 억울하긴 하지만 (이미) 많은 걸 잃었고 더 이상 혼란스러운 게 힘들어 마무리를 지으려 생각한 것 같다”며 “금융위를 대리하는 법무법인 화우 측의 동의를 얻어 법원에 소송 취하서를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올 5월 주전산기 교체 문제로 촉발됐던 KB금융 내분 사태는 4개월 만에 일단락됐다. KB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회추위)의 인선 작업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회추위는 다음달 2일 3차 회의를 열어 회사 안팎에서 추천된 100여 명의 후보 가운데 10여 명을 1차 후보군으로 추릴 계획이다. 이후 외부 인력전문기관(서치펌)의 평판 조회를 거쳐 1차 후보군 10명은 4명의 2차 후보군으로 압축된다. 4명은 심층 면접 절차를 거친다. 회추위는 이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1명을 최종 회장 후보자로 결정해 이사회에 추천할 예정이다. 회추위 관계자는 “모든 절차는 다음달 말까지 마무리할 방침”이라며 “각 후보의 동의를 전제로 1·2차 후보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했다. 외부 여론 검증을 겸하겠다는 의미다. 현재 100여명의 회장 후보군엔 KB금융 안팎에서 거론되고 있는 인물이 대부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KB금융 내부 출신으론 민병덕 전 국민은행장, 윤웅원 현 KB금융지주 부사장, 박지우 국민은행장 직무대행, 윤종규 전 KB금융지주 부사장, 김옥찬 전 국민은행 부행장, 김기홍 전 부행장, 남경우 전 부행장 등이 거론된다. 외부 출신으로는 우리은행장 출신인 이종휘 미소금융중앙재단 이사장, 조준희 전 기업은행장, 이동걸 전 신한금융투자 부회장, 오갑수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 등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그러나 이번 KB사태를 겪으면서 낙하산 인사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 청와대나 정부도 섣불리 개입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이 때문에 유력한 후보군이 아직은 부각되지 않고 있다. 뒤집어 보면 의외의 인물이 선택될 여지도 그만큼 크다.

 금융당국이나 청와대도 극도로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말을 꺼낼 입장이 아니다”(금감원 고위 관계자) “우리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금융위 간부)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관피아(관료+마피아)’ 논란이 일 수 있는 기획재정부나 금융위·금감원 등 출신 인사는 후보군을 압축해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배제될 것으로 보인다. 회추위 관계자는 “내부 출신은 대부분 금융당국으로부터 징계를 받았거나 경력이 약하고 외부에선 KB지주를 이끌어갈 만한 연륜을 가진 중량급 인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KB사태가 불거진 뒤 제기됐던 지주 회장과 국민은행장 겸임은 차기 회장이 선택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두는 방향으로 정리됐다. 회추위 관계자는 “회장과 은행장 겸임 문제는 회장이 선출된 뒤에 논의할 사안”이라며 “새 회장의 뜻이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회추위 내부에선 ‘외부 출신 회장-내부 출신 행장’ 구도가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장이 행장을 겸하게 되면 KB금융 내분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지주 경영의 은행 쏠림 현상이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신 내부 출신 행장을 발탁해 경영을 안정시키면 지주회사 체제의 장점도 살리면서 회장과 행장의 고질적인 권력투쟁도 막을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조현숙·심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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