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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 냉동 닭 팔면 원가의 3분의 1 건져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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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4호 22면

25일 수만 마리의 닭을 키우고 있는 전북의 한 양계 농가. 병아리를 농장에 들여오는 입식에서 출하까지 일반적으로 한달 여가 걸린다. [사진 하림]

전북 익산시 낭산면에서 양계농장을 운영 중인 심순택(60)씨는 요즘 부쩍 한숨이 늘었다. 심씨를 한숨짓게 만드는 건 바닥까지 떨어진 닭값 때문이다.

수요 줄고, 공급 과잉 … 양계농가들 한숨

수요 감소에 공급 과잉까지 겹치면서 닭 값이 최근 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 중이다. 10만여 마리의 닭을 키우고 있다는 그는 “양계장을 한 이후 올해가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올해는 양계농가에 가혹한 한 해가 되고 있다. 우선 1월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하면서 닭고기 수요가 큰 폭으로 줄었다.

AI는 7월 말까지 위력을 떨쳤다. 피해금액도 사상 최대치인 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농림축산식품부는 보고 있다. 여름 보양식의 대명사로 꼽히는 삼계탕 수요도 예년만 못했다. 여기에 세월호 사태의 여파로 관광객과 여행객이 큰 폭으로 감소하면서 닭고기 소비도 덩달아 타격을 입었다.

소비 반등을 기대했던 월드컵도 큰 힘을 쓰지 못했다. 한국팀의 성적 부진 탓에 월드컵 특수는 기대로만 남았다. 바캉스철인 8월 초에는 태풍 나크리와 할롱 등이 주말마다 비를 뿌린 것도 양계농가에는 타격이 됐다.

양계농가의 어려움은 대형마트 매출로도 확인된다. 이마트의 경우 올 들어 8월까지 닭고기 매출이 3.1% 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마트도 같은 기간 동안 닭고기 매출이 9.2%나 빠졌다.

진짜 문제는 공급과잉이다. 닭 공급이 늘어난 것은 지난해 양계농가들이 여름철 보양식 수요와 월드컵 특수를 겨냥해 병아리 입식을 늘린 탓이다. 실제 올해 2분기 기준 육계 사육 수는 전 분기보다 30% 늘어난 1억 마리에 달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닭고기 가격은 사상 최저 수준으로 폭락했다.

한국농수산식품공사에 따르면 올 9월 닭고기(1㎏·중품 기준) 평균 소매 가격은 4985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9월 닭고기의 ㎏ 당 가격은 5728원이었다. 값이 가장 좋았던 2011년 3월의 경우 ㎏당 6983원이었다. 닭고기의 값이 ㎏당 4000원대까지 떨어진 건 2010년 이후 처음이다.

농가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냉동 비축을 해야하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닭고기를 냉동할 경우 생닭보다 맛이 떨어져 인기가 없어진다. 때문에 냉동 닭고기로 팔 경우 생산원가의 3분의 1 정도 밖에 건지지 못하는 게 일반적이다. 냉동 비축을 택하는 양계농가가 늘면서 비축 물량은 전년 동기보다 136.5%가 늘어난 1000만 마리에 달한다.

닭고기 업계는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닭고기 가공업계 1위 업체인 하림이 대표적이다. 하림은 전국 600여 개 계약 농가에서 닭을 공급받고 있다. 하림은 계육협회와 토종닭협회 등과 함께 수시로 시식행사를 진행 중이다. 가금류의 안정성을 널리 알리는 데에도 힘을 쏟고 있다.

최근 자존심을 접고 롯데마트와 손잡고 PB(자체 브랜드 상품)를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간 유통업체의 PB상품은 업계 2~3위 업체나 시장 점유율이 낮은 곳에서 만드는 게 일반적이었다. 1등 업체가 유통업체 PB상품을 만들어 내놓으면 기존 상품의 매출을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때문이었다.

양계농가의 희망은 아시안게임이다. 올해 마지막 특수를 기대하는 것이다. 김환웅 롯데마트 닭고기MD는 “닭고기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폭락해 산지 농가의 피해가 계속 늘고 있어서 걱정”이라며 “닭고기가 안전하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려 소비를 늘리려 한다”고 말했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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