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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석조전을 역사자료관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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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근 덕수궁 석조전 동관을 국립근대미술관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식 확인 절차 없이 한 미술계 인사의 언론플레이로 진행되고 있는 것에 대해 심히 유감을 표한다. 덕수궁 석조전 동관(등록문화재 제80호, 2004년 2월 20일 지정)은 지상 3층의 조적벽 건축물로 외부는 화강석으로 마감(건축면적 493평, 연면적 1247평)했으며 전시실 11개실 752평, 수장고 3개실 495평 규모로 영국인 G R 하딩이 설계했다. 석조전은 고종 황제의 처소로서 대한제국의 역사성을 간직하고 있는 대표적 문화재다. 고종의 처소로 쓰일 당시 1층 시종의 거실, 2층 접견실 및 홀, 3층은 황제와 황후의 침실.거실.욕실로 사용됐다.

석조전은 1897년 대한제국으로 정한 이후 1900~1909년 건립된 근대건축의 대표적 건물이다. 석조전은 건물에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자두꽃 문장이 조각돼 있는 역사적 사실을 간직한 문화재로서 고종 황제의 생활사, 대한제국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다. 46년에 이곳에서 처음 미.소 공동위원회가 개최되고, 유엔 한국위원회 건물로도 쓰인 역사가 있는 건물이다. 54년 국립박물관, 73년 국립현대미술관, 90년부터 궁중유물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즉 우리가 현재 소홀하게 정리하고 있는 근대 시기(대한제국)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최근 일부 미술계에서 근대미술관으로 활용하자는 소수 의견이 나오고 있으나 그런 주장은 문화유산의 역사.문화적 가치에 대한 무지를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고 석조전은 활용보다는 우선 보수가 필요하다. 2003년 구조안전진단 결과 2.3층 회랑의 도리석 중앙부에 심한 균열이 있고, 외부 벽체의 사선 균열이 다수 발견됐으며, 지붕이 부분적으로 물이 샌다고 한다. 또한 미술관으로 활용한다면 내부를 개조해야 한다. 석조전의 내부 개조에는 전적으로 반대한다. 문화재는 원형대로 보존해야 하는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독도 문제, 동북공정, 일본의 교과서 왜곡, 동해 표기 등 근대사가 왜곡되는 것은 우리 내부에서 근대시기를 연구하고 자료를 집대성하지 못한 이유도 분명히 있으며 우리 스스로 반성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덕수궁 석조전은 근대 대한제국 시기의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간직하고 있으므로 대한제국 역사자료관과 같은 목적으로 활용돼야 하며, 고종 황제의 생활상과 대한제국의 역사유물을 보존하고 보여줄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돼야 한다. 시민의 힘으로 지켜낸 옛 경기여고 터, 중명전과 함께 덕수궁 전체는 대한제국 변천사의 거점 역할을 해야 한다.

미술계 일부에서 모자라는 미술관 확충, 73~86년 미술관으로 사용했던 전례, 석조전은 신고전주의 양식의 근대미술 작품이기에 미술관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접근성이 떨어지는 과천미술관의 대체 공간으로 대한제국의 정궁인 덕수궁의 대표적 건물을 미술관으로 활용한다는 발상은 문화재 보존에 역행하며 몰역사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조직 이기주의에 불과하다. 과거에 미술관으로 썼으니까 현재도 미술관으로 써야 한다는 논리는 우리의 대표적 문화유산인 궁궐에 대한 개념을 망각한 위험한 발상이다.

또한 국민에게는 덕수궁이 대한제국의 대표적 궁궐 문화유산이 아니고 단순히 미술품 전시공간으로 왜곡될 소지가 있고, 조선 왕궁의 이미지조차 희석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오히려 국립미술관은 미술품의 보존.전시를 21세기 국가적 위상에 맞게 첨단시설을 갖춘 미술관으로서의 용도에 맞는 건물을 건립해야 하며 기무사 터를 최대한 활용하면 될 것이다.

아울러 기존 건물의 내부 공간에 미술품을 억지로 꿰맞춰 전시하고 있는 석조전 서관도 동관과 함께 대한제국 역사관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문화재청에서 관리해야 한다. 또 뉴욕의 현대미술관, 영국의 데이트 갤러리,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 도쿄(東京)의 국립근대미술관 정도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하지만 외국과 우리는 전통예술의 변천사가 다르고, 장소와 건물이 갖는 역사성, 주변 환경과 조건이 판이하게 다른 것을 간과하지 못한 억지 논리에 불과하다.

전직 장관과 합의됐다고 하나 확인해 본 결과 일방적인 통보에 불과했다고 한다. 석조전의 관리권자인 문화재청에 협조나 검토문서 한 번 없이 미술관으로 사용이 결정됐다는 식의 언론 유포는 국가의 미술계를 대표하는 책임 있는 사람의 올바른 처사라 볼 수 없을 것이다.

덕수궁 터(옛 경기여고 터)와 을사늑약의 현장 중명전을 포함한 덕수궁을 볼 수 있는 날을 기대하며, 이제라도 우리의 아픈 근.현대사의 흔적과 유물, 자료를 보며 현재 벌어지고 있는 역사 왜곡에 대해 단호히 대처해야 할 것이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