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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영화속 지골로는 누구? 현빈·장국영·존 터투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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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골로(Gigolo)는 단순하게는 제비족, 좀 더 깊이 들어가면 몸 파는 남자를 뜻하는 단어다. 그렇다면 ‘지골로 인 뉴욕’(원제 Fading Gigolo, 9월 25일 개봉, 존 터투로 감독)은 적나라한 섹스로 점철된 작품일까? 아니다. 뜻밖에도 지골로를 통해 마음의 문을 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영화 속 휘오라반테를 시작으로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지골로 캐릭터들을 소환했다. 이제 보니 꽤 다양한 매력의 소유자들이다.

[매거진M] 마음을 훔친 지골로 캐릭터 6

섬세한 지골로

‘지골로 인 뉴욕’ 휘오라반테 원석을 알아보는 머레이(우디 앨런)의 눈이 아니었다면, 휘오라반테(존 터투로)는 그저 꽃집의 평범한 파트타임 직원이나 꼼꼼한 배관 수리공 정도로만 기억됐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머레이는 지골로로 일해 볼 것을 권한다. 마침 머레이는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섹시한 여의사 파커(샤론 스톤)로부터 ‘쓰리섬’에능한 지골로를 소개해주지 않겠냐는 은밀한 제안을 받은 참이다. “전 꽃미남이 아닌데요”라는 휘오라반테의 말에 머레이가“믹 재거가 꽃미남이었어? 밤의 황제였지”라며 부추긴 덕분에 한 사람은 일감을 물어오고, 또 한 사람은 성실하게 일하는 기묘한 파트너 관계가 체결된다. 함께 일하던 서점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자 하릴없이 수입이 줄어든 두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돈벌이는 없다. 멀대같이 키만 크고 딱히 매력적인 구석도 없어 보이던 휘오라반테는 보란 듯이 여자들을 휘어잡기 시작한다. 꽃이라는 연약한 생명을 섬세하게 다뤘던 손길로 여자를 부드럽게 매만지고, 말수는 적지만 타고난 센스로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결국 그는 사방에 벽을 만들듯 폐쇄적으로 살았던 유대인 미망인 아비갈(바네사 파라디)마저 변화시킨다. 지치고 아픈 마음을 가만히 어루만져주는 것. 함께인 순간만큼은 정말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한가득 선사하는 것. 이러한 휘오라반테의 ‘영업 ’에 빠진 아비갈은 말한다. “당신은 고독한 영혼에 마법을 불어넣어요.”

휘오라반테는 존 터투로가 연기한 모든 역할을 통틀어 거의 최상급으로 멀쩡하고 멋진 인물이다. 외모만 조금 아쉬울 뿐 성품 면에서는 단점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침착한 말투로 머레이와 주고받는 몇몇 대화에서는 지성미마저 넘친다. 외로움을 안기는 존재는 사람이지만, 그 극복 역시 사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지골로 휘오라 반테. 몸보다 뇌와 진심이 섹시한 인간적 매력의 소유자다.

패션왕 지골로

‘아메리칸 지골로’(1980, 폴 슈레이더 감독) 줄리앙 이토록 완벽하게 멋졌던 지골로는 드물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말쑥한 줄리앙(리처드 기어)은 아르마니 수트를 입은 남자의 모범 답안 같은 캐릭터다. 고급 호텔에 살며 벤츠 컨버터블을 몰고 예술품 수집에도 조예 깊은 남자. 서랍 안에 잘 정리된 셔츠와 넥타이를 일일이 매칭하며 신중하게 옷매무새를 살피는 남자. 그가 팬티 바람으로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단련하는 모습은 지금 봐도 코피가 쏟아질 듯한 명장면이다. 그런 줄리앙이 누명을 쓰고 살인 사건 용의자가 됐을 때, 그를 구원한 것은 잘난 외모나 뼛속 깊은 직업적 자부심이 아니다. 사랑이다. “진정한 사랑을 얻기 위해 얼마나 멀리 돌아왔던가.” 그렇게 말하는 줄리앙의 공허한 표정에 모성애를 느끼며 쓰러진 여성 팬이 한둘이 아니었다.

안쓰러운 지골로

‘해피 투게더’(1997, 왕가위 감독) 보영 오랜 연인인 보영(장국영)과 아휘(양조위)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것은 전적으로 보영의 탓이다. 그는 늘 멋대로 떠나갔다가 “우리 다시 시작하자”는 간단한 말을 앞세워 아휘를 찾아온다. 그때마다 화가 나지만 묵묵히 그를 다시 자신의 품으로 받아주는 아휘. 그에게 보영의 존재는 끊을 수 없는 약이다. 아휘의 곁에 있으면 행복할 텐데, 보영은 계속해서 남자들에게 몸을 팔며 돈을 벌고 느끼지도 않는 행복을 연기한다. 늘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연약하기 그지없는 인물. 동시에 사랑을 받는 법도, 받은 것을 돌려주는 법도 모르는 어린아이 같은 인물. 제멋대로이지만 늘 슬퍼 보이는 보영의 얼굴은 배우 장국영의 젊은 날의 초상 같은 모습이 됐다.

웃기는 지골로

‘듀스 비갈로’(1999, 마이크 미첼 감독) 듀스 비갈로 멍청하지만 순박한 듀스 비갈로(롭 슈나이더). 물고기를 너무나 사랑해서 수족관 청소원으로 일하던 그는 민망한 사건으로 해고된 것도 모자라 남의 개인 수족관을 박살 내버리기까지 한다. 수족관 주인이 마침 지골로였던 인연으로 엉뚱하게 지골로로 변신한 이 남자, 고도 비만의 흑인 아줌마부터 쉴 새 없이 욕을 뱉는 투렛 증후군 환자까지 별별 희한한 고객들을 접대하기 시작한다. 따뜻한 마음씨를 무기로 뜻밖에 승승장구하는 듀스 비갈로의 지골로 행세는 속편까지 이어졌다. ‘듀스 비갈로:유로피안 지골로’(2005, 마이크 비겔로 감독)는 더욱 황당한 일들로 가득하다.

쓸쓸한 지골로

‘아이다호’(1991, 구스 반 산트 감독) 마이크 스콧(키아누 리브스)은 인상적인 캐릭터였다. 하지만 긴 여운은 역시 마이크(리버 피닉스)의 몫이다. 그에겐 길에서 몸을 파는 생활이 스콧처럼 아버지에 대한 반항이자 일탈일 수 없었다. 마이크에겐 그것이 삶 그 자체였다. 스콧을 사랑하지만 그와 자신이 속한 세계가 너무 다름을 체감한 마이크의 눈에는 쓸쓸함이 일렁인다. 남자끼리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스콧의 말에 머뭇머뭇 마음을 내비치던 마이크의 한마디, 거기엔 순수하고도 가련한 순정이 있다.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어, 돈을 받지 않고도. 널 사랑해. 그리고… 돈 안 내도 돼.” 그리고 언제나처럼 기면증 때문에 길 위에서 쓰러져버린 마이크의 마지막 모습. 그건 당장 다가가 일으켜 세우고 꼭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고독한 몸뚱이였다.

섹시한 지골로

‘에이. 아이.’(2001,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지골로 조 주드 로의 미모가 빛을 발하던 시절, 여성을 기쁘게 하는 섹스 로봇으로 프로그래밍 된 지골로 조(주드 로)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한 캐릭터였다. 섹시함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태. 상대 여성에 따라 스타일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판타지를 극대화해놓은 인물이었던 셈이다. 외모도 외모지만, 진짜 인간이 되고 싶은 소년 로봇 데이비드(할리 조엘 오스먼트)의 여정에 함께하며 그를 살뜰하게 보살피는 자상함으로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었다.

한국영화에도 지골로가 있다

한국영화에서 지골로, 즉 제비족이라는 직업군을 따져보면 그 역사가 꽤 깊다. 대표적인 영화는 ‘자유부인’(1956, 한형모 감독). 양품점에서 일하게 된 평범한 주부 선영(김정림)에게 접근해 춤을 가르치는 대학생 춘호(이민)가 등장한다. 씨름 선수였던 과거를 뒤로하고 돈을 벌기 위해 몸을 파는 남자가 된 일봉(임성민)이 주인공인 ‘장사의 꿈’(1985, 신승수 감독)도 있다. 청담동 호스트바를 배경으로 하는 ‘비스티 보이즈’(2008, 윤종빈 감독)는 더욱 직설적으로 지골로를 다루는 경우. 반면 극 중 그 활약(?)이 두드러지게 보이진 않지만 직업이 명백한 지골로였던 인물도 있다. ‘만추’(2011, 김태용 감독)의 훈(현빈)은 미국에서 교포 부인들을 대상으로 몸을 파는 남자다. 1966년 이만희 감독이 연출한 동명 원작에서는 지골로가 아닌 위조 지폐범이었던 캐릭터다.

매거진M 이은선 기자 haroo@joongang.co.kr
사진=영화 ‘지골로 인 뉴욕’, ‘만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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