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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빈 칼럼] 학교에 스승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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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주 서울대 동양사 세미나실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행사가 있었다. 서울대 동양사학과에 재직했던 교수 네 분의 사진을 모시는 일종의 제막식이었다.

작고한 동빈 김상기.민두기 교수, 그리고 고병익.전해종 교수의 사진을 벽에 걸고 겸해서 전해종 교수가 기탁한 장학금을 받은 대학원생들의 연구발표가 있었다.

이게 무슨 의미 있는 일인가. 이 제막식을 발의한 박한제 교수는 "역사를 배우고 가르치면서 어떻게 학과의 역사를 몰라서 되겠느냐, 우리 대학 안엔 학생기념비만 있고 스승의 기념비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경할 스승이 그렇게 없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 학생 추모비만 있는 대학교정

놀랍게도 서울대 캠퍼스엔 무려 14기의 학생 추모비가 세워져 있지만 스승의 추모비는 어디에도 없다. 1981년 도서관에서 투신 자살한 김태훈군을 비롯해 86년 분신 자살한 김세진.이재호군, 87년 고문치사 당한 박종철군 등의 추모비가 있다.

또 89년 실험실 폭발사고로 죽은 3명의 원자핵공학과 학생들의 추모비도 있다. 학생 추모비가 대체로 추락사.의문사.분신자살.고문치사 사고사로 점철돼 있다.

사고사를 빼면 모두 80년대 군사독재에 대한 민주화 항거의 증거들이다. 암울했던 시절 몸을 던져 민주화를 구현하려 했던 학생운동의 처참한 역사 표상이기도 하다.

연세대에도 이한열 열사 추모비가 있고, 고려대도 군 의문사의 김두황 추모비가 있다. 서울대와 다른 점은 대학 설립자의 흉상과 동상도 있고 연세대의 경우 백낙준.홍이섭.김윤경.최현배 선생 등 스승의 흉상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학생운동이 격화했던 80년대 이후 교수 기념비는 없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치열했던 학생운동 시절 이후 대학엔 스승은 없고 '투쟁'만 있었다는 결과를 이들 추모비가 스스로 웅변하는 셈이다.

이제 문민정부 이래 민주화 정권이 3대째 이어지고 있다. 386 학생운동 세대들이 정권의 핵심에까지 진출했다.

국회의원 2백73명 중 43명이 시국사건 관련 구속 전력이 있고 범운동권을 합치면 전체의 25%인 70명이나 된다.당시와 비교하면 실로 상전벽해의 세상이 됐다.

그런데도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게 전교조와 교장단의 갈등 현상이다. 나는 89년 전교조가 전교협이라는 이름으로 참교육 참스승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교육개혁을 외쳤을 때 이를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머리에 붉은 띠를 매고 정치투쟁에 나섰을 때는 그들을 반대했다. 그렇지만 4년 전 전교조 합법화를 통해 이들을 포용하자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세상이 바뀐 만큼 그들도 달라질 것을 기대했으나 그들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독재권력의 이념편향 교육을 반대했던 그들이 또 다른 형태의 이념교육을 하면서 노무현 대통령까지 나서 그들의 편향성을 문제삼기에 이르렀다.

전교조 초창기 참교육을 외쳤고 영원한 스승으로 남자는 그들이 이젠 교장 직선제까지 들고 나서면서 학교 권력의 주도세력처럼 행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에 이르렀다.

그런 점에선 전국교장협의회라는 단체도 달라져 보이지 않는다. 원로교육자로서 모범과 포용을 보여야 할 교장단체가 전교조와 맞서 마치 사생결단하듯 대결구도로 포진하고 있다.

완강한 수구보수의 자세에서 조금도 변치 않고 있다. 초.중등 교육 현장의 시계가 다시 80년대로 되돌려진 착각마저 들게 한다.

*** 언제까지 투쟁만 할 것인가

나라의 장래는 교육에 달려 있다. 반세기 넘는 대학 역사에서 존경할 스승의 흉상 하나 없는 대학에서 올바른 교육이 이뤄졌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대학이 그러하다면 초.중.고 교육엔 스승이 스승다운 면모를 보여왔던가.

교총과 전교조로 나뉘어 세싸움을 벌이고 늙은 교사와 젊은 교사가 패를 나누어 교장 자리를 둘러싸고 맞대결을 벼르고 있다. 툭하면 교단을 떠나 가투를 벌이는 교육현장에서 나라의 장래가 보이는가.

"우리집 주차장 뒤편에서 부모님 소개로 당신을 처음 만난 지 벌써 28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당신은 나의 인생이자 열정, 그리고 삶의 원동력이었습니다. "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그저께 은퇴를 하면서 발표한 '사랑하는 농구에게(Dear Basketball)'라는 고별사 중 일부다.

농구 대신 스승이라는 말을 대입할 때 우리의 교육은 살아날 수 있다. 교사가 교사다운 모범을 보여야 스승은 나의 인생이자 열정, 그리고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권영빈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