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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빠리' 완장질은 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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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강갑생 기자 중앙일보 교통전문기자
강갑생
JTBC 사회 1부장

요즘 주변에서 자주 듣는 단어가 ‘완장’이다. 완장 찼다, 완장질한다 등등. 사전을 보면 완장은 신분이나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 팔에 두르는 표장으로 적혀 있다. 이른바 권력의 상징이다. 하지만 완장이란 표현엔 긍정보단 부정적 이미지가 더 많다. 안하무인, 무자비한 탐욕을 연상시킨다. 오래 전 읽었던 윤흥길 작가의 소설 『완장』이 새삼 떠오른다. 주인공 임종술. 한때 동대문 시장에서 목판 장사를 했고 포장마차도 했다. 양키 물건을 팔기도 하다 다 접고 고향에 돌아왔다. 하지만 ‘농사는 땅이 없어서 못 짓고 장사는 밑천이 없어서 못 허고 품팔이는 자존심이 딸꾹질허는 통에 못하는’ 한량이다. 그러다 최 사장이 차지한 동네 저수지의 감시원 자리를 제안받는다. 자존심이 상해 일언지하에 거절했지만 “완장 채워준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다. 시장통 경비나 방범에 쫓기던 뼈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자비를 들여 노란 바탕에 파란 글씨로 ‘감독’이라고 새긴 비닐완장을 만들어 찬다. 그러곤 마치 때까치 종류에서 하루 아침에 보라매 같은 당당한 모습으로 탈바꿈한 양 굳게 믿는다. 저수지에 몰래 낚시를 왔던 사람들은 그에게 호되게 당한다. 심지어 초등학교 동창과 그 아들까지 안면몰수하고 두들겨 팬다. 쥐꼬리만한 권력을 겁 없이 휘둘러댔다.

 얼마 전 대리기사를 폭행해 구설에 오른 세월호 유가족 대표들을 보면서 그 임종술이 생각났다. 비록 술에 취했다곤 하지만 사회적 약자인 대리기사를 호통치며 주먹을 날린 행위는 그야말로 ‘완장질’이다. 폭행 직후 찾아간 병원에서도 간호사에게 “우리가 누군 줄 아느냐”며 소리쳤단 얘기도 들린다.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위로를 보냈던 국민들로선 인상이 찌푸려지는 사건이었다. 게다가 섣부른 완장질 탓에 다른 세월호 유가족들만 더 큰 상처를 입게 됐다.

 소설 속엔 인상적인 구절이 하나 더 들어 있다. 이상하리 만치 완장에 집착하는 종술에게 그의 연인 부월이 던진 말이다. “눈에 뵈는 완장은 기중 벨 볼일 없는 하빠리들이나 차는 게여. 진짜배기 완장은 눈에 뵈지도 않어…. 진수 성찬은 말짱 다 뒷전에 숨어서 눈에 뵈지도 않는 완장들 차지란 말여.”

 맞는 말이다. 역사를 돌이켜 봐도 그렇다. 정치인·고위 공직자·재벌 등이 대부분 보이지 않는 완장이다. 진수성찬은 정말로 그들의 차지였다. 현재도 별반 다를 바 없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언급한 ‘부의 세습’처럼 ‘완장의 세습’까지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완장’이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완장은 힘·권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에 못지않은 책임과 의무가 늘 함께 한다. 그 무게를 더 크게 느껴야만 한다. 그러면 자연히 잘 익은 곡식처럼 고개가 숙여질 것이다. 그런 모습일 때라야 국민들은 제대로 된 ‘완장’으로 인정해 준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며 호통이나 치는 ‘하빠리’ 완장질은 정말 그만 보고 싶다.

강갑생 JTBC 사회 1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