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명상] 9. 계절의 순수함으로-정은광 교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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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중국 당나라 중기의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시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속세의 4월 꽃들은 다 졌는데/ 산사의 복사꽃은 지금이 한창이네// 돌아가 버린 봄 찾을 길 없어 못내 아쉽더니/ 그 봄 이곳으로 옮겨왔음을 내가 몰랐음일세'

이 시는 817년에 중국 강서(江西)에서 지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가 사는 충청도 보은에도 며칠 간 비가 내리고 산들의 푸르름이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대청호의 물길은 산 그림자로 어른거리고 있습니다. 이 땅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그 혼란했던 이라크 전쟁과 폭력성과 거기에 반대하는 지구촌 사람들의 거리 행진, 그리고 북한의 핵 문제 등으로 눈만 뜨면 마음이 분분해지고 있었습니다.

저처럼 묵묵히 수행을 강조하고 세상을 관조하는 사람에게는 '큰 일이 생겼구나'하는 정도의 마음이 머물곤 했지만 전쟁의 당사자들과 인권을 생각하는 많은 휴머니스트에겐 격정의 시간들이었으리라 여겨집니다. 어느덧 4월의 꽃 소식과 비바람 속의 자연의 향기들은 어김없이 흘러가고 5월이 성큼 다가오고 있습니다.

꽃의 색깔과 향기가 아름답듯이 우리가 사는 이 지구촌의 환경은 이 봄에 더욱 더 아름답고 활기차게 보이지만 그 저편의 인간의 자연관은 편리를 위한 개발 위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편리하게 사용하는 전기를 일으키는 원자력 발전소의 핵 폐기물을 후손에게 환경적으로 폐를 끼치지 않게 보존.저장하는 방안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저는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돈도 좋지만 돈에 물들면 사람의 정신이 물질만능과 배금주의로 흘러결국 삶의 모습이 황폐하게 됩니다. 환경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서 지금 어느 남자 교무는 27일째 단식을 하면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또 몇몇 종교인은 새만금의 개펄을 살리기 위해 간척사업 현장인 전북 부안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48일간의 삼보일배(세 걸음 옮긴 뒤 한번 절하는 수행)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류의 발전으로 여겨졌던 모든 개발은 사실 인간의 편리성과 그에 따른 욕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런 논리 속에서 우리가 물질이 주는 편안함에 안주하는 사이 자연은 황폐해지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대청호에서 들었던 어느 시민의 말이 아직 귀에 쟁쟁합니다. 인간은 움직이기만 하면 쓰레기를 만든다 더군요. 그날 이후로 저에겐 일상의 모든 행동에 앞서 자연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환경을 제일로 여기는 아름다운 나라를 가꾸기 위해 여러 종교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제가 사는 충북의 대청호 주변에 있던 대통령 별장 청남대가 최근 주민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감탄은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모습 그대로 아름다운 환경이 살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인위적인 개발이 끼어들지 않은 청남대의 자연적인 모습에서 삶의 기쁨과 활력까지 느낀다고들 말합니다.

조금 있으면 감꽃 향기가 마을 어귀를 감고 도는 5월입니다. 햇볕에 반짝이는 감나무 잎새처럼 우리의 삶도 싱싱하게 살아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은은한 감꽃 향기를 맡으며, 유유자적하는 넉넉함으로 자신을 다시 한번 바라보는 시간을 우리 모두 가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정은광교무 한국화가.원불교 보은(충북) 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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