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4개월 옥살이’ 김지하 시인에 국가 15억원 배상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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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시절 민청학련 사건 등 각종 시국사건으로 6년4개월간 옥고를 치른 시인 김지하(73)씨와 가족이 국가로부터 15억원 상당의 배상금을 받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4부(부장 배호근)는 김씨와 아내 김영주 토지문화관 관장, 장남 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는 김씨 등에게 15억여원을 지급하라”며 24일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가는 김씨를 수사ㆍ기소 절차, 재판과정, 형 확정 후 집행하는 과정에서 가해자가 돼 위헌적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며 “법치를 부정하는 행위에 대한 재발방지를 위해 국가가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씨는 감옥에서 일반적인 수용자와 달리 24시간 불을 밝힌 감시카메라가 작동하는 독방에서 2년간 수감생활을 했다"며 "출소 이후엔 일상생활에 감시를 받느라 정신병적 증세를 겪어야 했다”고 밝혔다. 또 “부인은 결혼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상당기간 남편의 소식을 듣지 못하고 갓 태어난 아들을 혼자 양육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다만 김씨가 풍자시 ‘오적’을 잡지 사상계에 실어 북한을 이롭게 했다는 ‘오적 필화사건’은 재심에서 무죄를 받지 못해 이로 인한 구금을 불법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필화사건은 위자료 산정에 유리한 근거로 참작했다.

재판부는 김씨에 대한 위자료를 15억5000만원으로 정하고 김씨가 앞서 형사보상금으로 받았던 4억2800여만원을 제외한 금액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와 함께 부인은 2억8000만원, 아들은 1억원을 받게 된다.

‘오적’을 사상계에 게재해 반공법 위반 혐의로 100일간 수감생활을 한 김씨는 74년에는 민청학련 사건을 배후에서 조종한 혐의로 구속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후 형 집행정지를 받고 10개월 만에 풀려났지만 진상을 알리는 글을 발표했다가 또 5년간 구금됐다.

김씨는 지난해 재심을 청구해 민청학련 사건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받았다. ‘오적필화’사건에 대해서는 자료 부족으로 징역 1월의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이후 국가를 상대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35억원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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