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교육에 철학·인문학 도입 인품 갖춘 의료인 키워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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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여 전 고 김수환 추기경의 각막 기증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가톨릭의대·의학전문대학원 주천기(서울성모병원 안과) 학장. 그는 당시 86세로 선종한 김 추기경의 각막을 떼어낸 뒤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고 회고했다. 의학적으로 각막내피 수는 2000개를 넘겨야 생착이 가능하다. “연세로 보면 불가능했죠. 게다가 백내장 수술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의 간절한 기도 탓이었던지 내피세포 수가 2008개로 나와 이식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그는 “자칫 추기경님의 숭고한 뜻이 이뤄지지 못할까 봐 간담을 쓸어내렸다”고 말했다.

그 이후 주 학자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봉사와 사랑으로 사회를 밝히는 의사가 되겠다고 다짐한 그는 아프리카 어린이 실명 예방을 위해 케냐로 떠나기도 했고, 열악한 환경의 아이티에선 환자들에게 백내장 수술을 집도했다. 수상한 상금을 그 자리에서 기부한 일화도 알려진다. 참된 의도를 실천하는 그의 가치관은 학장이 되면서 후학 양성에 그대로 반영됐다. ‘굿 닥터’ 양성을 위한 의학교육 개발에 팔을 걷어붙인 것. 주 학장은 “실력 있는 의사가 최고 의사라는 일념으로 앞만 보고 달린 때가 있었다. 하지만 추기경님께서 선종 전 세상을 밝히는 의사가 되라고 당부한 뒤 베푸는 삶을 늘 고민한다”고 말했다.

그가 최근 추진하는 ‘굿 닥터 프로그램’의 목표는 인성을 갖춘 인재 양성이다. 그는 “타 분야와 융합하며 글로벌 오피니언 리더로 성장하려면 인문학적 소양으로 인품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의전원에서 의대로 다시 전환하는 2015년을 기점으로 삼았다. 변화의 구체적인 포석은 ‘진보·융합형 인재 양성’이다. 의대에 입학한 학생은 철학과 인문학을 집중적으로 배우는 ‘옴니버스 교육과정’을 1년 이상 거친다. 매주 수요일은 오로지 ‘인문학의 날’로 정했다.

주 학장은 “의학·공학·인문사회과학·경영학·법학 등을 접목한 교육으로 역량·인성을 풍부하게 강화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가톨릭대 의대는 서강대와 캠퍼스 공동체 협약을 맺었다. 가톨릭대 학생은 서강대의 인문·사회·연구·해외탐방·사회체험 커리큘럼에 참여할 수 있다. 이를 계기로 의사-경영학석사(MD-MBA)를 취득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진료하는 의사를 넘어 의료경영, 사회보건·지역보건·보건행정 사업, 바이오의약산업계 경영자, 벤처기업인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리더로 성장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그는 지난해 학장으로 취임한 뒤에도 여전히 서울성모병원 안센터에서 환자를 진료한다. 환자와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다. 국내 각막이식·백내장·노안수술 분야를 이끄는 바쁜 일상에도 연구에 매진한다. 그는 “3년 전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70억원 규모의 연구과제를 받아 레이저를 이용한 각막수술 로봇을 개발해 곧 임상시험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각막을 칼로 도려내는 것이 아니라 레이저로 디자인해 정교하게 각막이식이나 백내장 치료를 할 수 있다. 이는 수입 일변도인 안과 장비의 국산화에 획을 긋는 ‘사건’이다.

첨단을 달리는 안과 기술과는 달리 각막 기증·수술은 정체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각막 기증 소식이 알려지면서 당시 기증자 수는 반짝 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국내 각막 이식 수술은 한해 1000여 건으로 주저앉았다. 인구 수로 따져봤을 때 미국의 6분의 1 수준이다. 그마저도 이식 각막의 50%는 수입에 의존한다. 주 학장은 “추기경님의 뜻이 다시 알려져 각막 기증 운동이 사회에 확산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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