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는 경제학 비난했지만 영혼없는 경제학자는 없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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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3호 10면

경제학은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유용한가. 이 질문은 내가 경제학을 계속 공부할 것인지 고민하던 시절부터 던져 온 질문이다. 린다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모임의 폐막 패널토론 주제가 바로 이 질문이었던 것을 보면 나만 가졌던 의문이 아닌 것 같다.

노벨상 수상자와 함께한 3박 4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강연과 토론에서도 그런 고민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회의에서 논의된 연구들은 불평등·혁신·불확실성 등 모두 현재의 중요한 이슈들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들이었다. 스티글리츠 교수의 강연에선 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그것이 다시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중요하게 다뤘다. 로스 교수도 장기(臟器) 거래처럼 사회관념상 금기시되는 거래를 사회적으로 용인 가능한, 돈을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적용시키는 방법에 대해 논했다. 정치적 발언이 잦은 페루의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경제학상이 아닌 문학상 수상자로서 이례적으로 초청됐고 그의 연설에 긴 시간이 할애됐다. 경제학이 다른 사회과학에 대해 배타적이고 편협하다는 비판을 종종 받아왔다는 점에서 이런 노력들은 경제학이 더욱 유용한 학문이 되는 데 기여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도움이 많이 됐던 시간은 ‘메커니즘 디자인’에 대해 매스킨·멀리스·마이어슨 교수와 함께한 패널토론이었다.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땐 그들의 성과를 이해하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직접 토론에 참여해 보니 그 성과들이 당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왜 중요했는지, 성과를 내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어떻게 극복했는지 설명해줘서 도움이 됐다. 마이어슨 교수는 기존의 개념들을 수정해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매스킨 교수는 자신이 도달한 일반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 먼저 수없이 많은 사례들을 고려해 보고 그것들로부터 귀납적으로 추론한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이런 얘기들은 내가 실제로 연구하는 입장에서 어떤 종류의 고민이 의미 있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가끔 경제학이 이념적인 학문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사실 굉장히 유연하다. 이번 린다우 회의 행사장 앞에 경제학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영혼을 가진 경제학자를 기다린다’고 써놓은 플래카드를 걸어놓은 걸 봤다. 하지만 영혼이 없는 경제학자를 찾는 게 훨씬 어려운 일이다.



글 싣는 순서
① 조셉 스티글리츠 (8월 24일)
② 앨빈 로스 (8월 31일)
③ 에릭 매스킨 (9월 7일)
④ 피터 다이아몬드 (9월 14일)
⑤ ‘경제학은 유용한가’ (9월 21일)


손석준 서울대 경제학부 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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