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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여름 야외공연이 원조 … 국기 흔드는 애국적 행사로 발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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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3호 14면

런던에선 이미 1700년대 중반부터 여름 야외공연이 드문드문 있었다. 하지만 구슬도 꿰어야 보배다. 여름 공연은 19세기 말 시리즈 공연으로 자리 잡았다. 1895년 음악 흥행업자 로버트 뉴먼(1858~1926)은 런던 중심부 랭엄 거리에 있는 퀸스홀에서 첫 시리즈 공연을 시작했다. 관객들이 거품을 뺀 합리적인 가격에 격식을 버리고 보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음악을 즐길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뉴먼의 아이디어는 그의 뒤를 이은 지휘자 헨리 우드(1869~1944)로 이어졌다. 우드는 뉴욕 필하모닉과 보스턴 필하모닉의 수석 지휘자 초청도 거절하고 런던에 머물며 프롬스를 계속 키웠다. 1930년까지 ‘헨리 우드 경과 그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프롬스를 계속 이어갔으며 30년에 BBC심포니가 창단되자 이를 이끌고 프롬스를 계속 열었다. 1941년 독일의 폭격으로 퀸즈홀이 사라지자 로열앨버트홀로 본거지를 옮겼다. 현재 프롬스의 총감독은 BBC라디오3의 본부장인 로저 라이트가 맡고 있다.

프롬스 공연의 유래는…

프롬스의 특징 중 하나가 시대성과 역사성이다. 행사가 열리는 시기의 시민들의 관심사와 의식을 반영한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을 맞는 올해는 진중한 추모곡이 연주 목록에 포함됐다. 가브리엘 프로코피에프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1914’와 존 트레버의 ‘진혼곡’이 초연됐다. 이보르 거니의 ‘전쟁 엘레지’와 벤저민 브리튼의 ‘전쟁 진혼곡’도 연주됐다. 놀이를 통한 배움을 모토로 하는 BBC 어린이 프로그램과 함께하는 ‘어린이를 위한 특별 프롬스’ 공연도 펼쳐졌다.

프롬스 초기의 로열앨버트홀의 모습.

프롬스는 대중적이고 혁신적이다. 그런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는 공연이 프롬스의 시즌 마지막 날 공연인 ‘프롬스 인 더 파크’다. 대중은 프롬스를 이 공연으로 인식한다. 통상 9월의 둘째 토요일에 열리는 이 행사는 런던의 하이드파크를 비롯한 전국 여러 곳에서 열리는 야외 공연으로 이뤄진다. 1,2부로 나뉘는데 1부는 실내인 로열앨버트홀에선 BBC오케스트라가, 야외인 하이트 파크에서는 런던 필하모닉이 각각 연주한다. 2부는 서로 대형 화면으로 연결하며 동시에 즐기는데 주로 영국의 애국적인 곡을 연주하거나 독창 또는 합창하며 마지막은 영국 국가로 끝낸다.

그런데 런던 올림픽 직후인 2013년부터 큰 변화가 있다. 대부분의 관객이 영국 국기를 들고 와서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면서 음악을 즐기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을 이루는 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 깃발에 아일랜드 국기도 보인다. 노르웨이·독일·스페인 등 유럽 각국의 깃발도 보인다. 2부에선 국기 흔들기가 더욱 강렬해진다. 런던 올림픽 이후 국기 흔들기 행사로 전체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한다. 만나는 영국인마다 이런 애국주의적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걸쳐 확산되고 있다는 걸 느낀다고 말한다.

올림픽과 그 뒤로 이어진 프롬스의 애국적 노래 부르기는 국가와 국기에 냉소적이던 영국인마저도 바꿔놓았다는 것이다. 영국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계속 축소되던 느낌 속에서만 살아오다가 올림픽 이후 자신감을 크게 회복했다는 설명이다. 여름의 마지막 음악축제행사인 ‘프롬스 인 더 파크’에서 바로 이런 분위기를 현저히 느낄 수 있다. 그야말로 깃발에서 시작해 깃발로 끝난 행사다.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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