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통신] 강의노트 대신 총든 老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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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하트 사후키(60) 국립 바그다드 농과대학 교수는 22일 AK-47 소총을 든 채 농대 정문을 지키고 있었다. 작물학과 학과장인 그는 "가족과 교직원, 학교 시설을 지키기 위해 대학에 남은 교수들이 교대로 정문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사후키 교수는 우연히 만났다. 시아파 이슬람교도들의 시위 행렬을 촬영하려고 바그다드 농대 정문 근처에 차를 세우자 총을 든 초로의 남자가 "왜 여기에 차를 세웠느냐"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밝히자 그는 "차나 한잔 하자"며 학과장 관사로 나를 안내했다.

관사 입구에는 그가 직접 만들었다는 대피소가 있었다. 전쟁 이전 미군의 폭격을 피하기 위해 다섯 명의 가족이 대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거실에 들어서자 잘 정리된 책과 가구가 보였다. 바그다드 농대 졸업 후 미국 캔자스주립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딴 그는 1976년부터 바그다드 농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사후키 교수는 "바그다드 함락 이후 일부 대학이 약탈당했다"며 "도둑들이 내 연구실에 들어와 값나가는 장비는 몽땅 다 가져갔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교수들이 총을 드는 현실이 서글프지만, 약탈자들이 총을 들고 올 때는 총으로 막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학생들도 집이 교내에 있었다면 나처럼 자진해서 총을 들고 약탈을 막기 위해 애썼을 것이다.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지금 가족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전쟁 준비로 올 초부터 이라크 내 모든 대학은 사실상 휴교 상태였다"면서 "엉망이 된 학교와 사무실을 보면 막막하지만 차근차근 정리를 하면서 학교 정상화에 나설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사후키 교수는 차를 마시고 난 후 캠퍼스를 안내했다. 그는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이라크군의 헬기 10여대를 보여주며 "우라늄탄에 맞았으니 손대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라크군은 미군의 폭격을 피하기 위해 농대 캠퍼스에 헬기를 은닉했었다. 현재 농대 캠퍼스 일부는 미군 기갑부대 기지로 사용되고 있다.

"파괴된 이라크 헬기와 캠퍼스에 주둔한 미군 탱크를 보면 마음이 무겁다. 미군이 캠퍼스에서 철수한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이 총구가 그들을 향할 수도 있다"며 그는 목청을 높였다.

사후키 교수는 "나는 바트당 당원도 아니고 사담 후세인 지지자도 아니지만 이라크에는 후세인과 같은 강력한 통치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후세인을 독재자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라크가 강성한 국가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친미.친이스라엘계"라며 "미국의 도움을 받는 힘없는 정부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후키 교수는 "미국의 강압에 의한 민주주의는 결코 이뤄질 수 없다. 이라크인들은 미군이 철수한 뒤 진정한 민주정부를 수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정민 중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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