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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2)제75화 패션 50년 (33)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1960년대 초·중반의 세계적인 패션 경향은 한마디로 젊은이들 중심의 기발하고 실험정신이 강하게 두드러진 시기였다.
정치척으로도 미국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에 대통령자리에 앉은 (196l년1월) 「존·F· 캐네디」가 뉴 프런티어 정신을 부르짖었고 그의 매력적인 부인 「재키」도 역대 퍼스트 레이디들과는 과격적일 만큼 패션의 최첨단을 가는 멋쟁이여서 세계적인 유행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게다가 눈부시게 발달한 우주전자과학은 통신위성 탤스타1호 (1962년)를 발사함으로써 미국과 유럽간의 우주중계에 성공, 온 지구를 1일 문화권으로 만들었다.
이런 시대 상황을 반영하듯 대중음악도 이전의 경향과는 느낌이나 형식이 전혀 다른 것들이 등장해서 젊은 세대들의 사랑을 받았다.
즉 트위스트 음악과 춤이 폭발적으로 유행하고 영국의 그릅사운드 비틀즈가 전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이 된 것도 이 60년대 일이다.
그러나 다른 어느 분야보다도 60년대의 시대 정신을 강하게 반영한 것이 패션계.
비키니수영복과 토플리스, 그리고 미니스커트등 한 세대 전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발랄하고 대담한 노출 모드가 대거 등장해서 기성세대들을 크게 놀라게 했다.
1964년 초여름의 신문의 신란들은 유럽 피서지 해변에 등장한 토플리스 차림 여인들에 대한 기사를 커다랗게 취급하고 있다.
즉 리비에라 칸 같은 지중해연안 도시나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등 스칸디나비아 해변에는 젓가슴을 드러낸 토플리스의 모노비키니를 걸친 여인들이 믿을 수 없을만큼 많이 눈에 띄었다는 것이다.
놀란 경찰당국이 이 여인들의 벌거벗은 상반신을 담요로 둘러싸서 연행해 가는 등 벌금소동까지 벌였지만 런던 파리, 그리고 뉴욕 샌프란시스코등 세계대도시에서 날개 돋친듯 팔려나가는 모노비키니나 토플리스 드레스의 판매추세로 보아 한여름에는 더많은 수의 여성들이토플리스 대열에 끼어들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이처럼 세계 각처에서 즉결심판과 벌금형등 말썽을 빚은 토플리스는 1964년 미국디자이너「루디·건라이코」 가 내놓은 경천동지할 뉴모드.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다행히도 몇년후에 마이크로 비키니까지는 등장했지만 젖가슴을 드러내는 모노비키니가 눈에 띄었다는 보도는 없었던 것 같다.
토플리스가 경이적이었던 만큼 유행으로서의 폭이 넓고 생명력이 길지는 못했던 반면, 미니모드는 그 유행의 진폭이나 기간으로 보아 대단한 위세를 떨쳤다. 물론 우리나라도 그 영향권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1965년 프랑스의 1급 디자이너 「앙드레·크래지」가 내놓은 미니스커트는 처음 「어린애 옷 같다」느니, 「의자에 앉거나 몸을 구부렸을 때 특히 흉하다」 느니 하는 반발이 높았다.
그러나 영국의 말라깽이 소녀 패션모델 튀기(Twiggy)가 아주 짧은 머리형에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세계패션계의 신데렐라가 되면서 영패션의 주류를 이뤘다.
우리나라에는 미국에서 활동중이던 가수 윤복희가 1968년 미니스커트를 입고 귀국함으로써 처음 선을 보였다.
그 때부터 서울에서도 폭발적으로 유행의 물결을 타기 시각한 미니 선풍은 『다리가 굵고 짧은 동양여성에게는 안어울리는 모드』라는 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급속도로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그 당시 대부분의 양장점들이 새로 미니스커트를 맞추려는 이들이나 입던 스커트를 새로운 유행추세에 맞게 한단 짧게 고치려는 여성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던 것을 지금 30대 이상들이면 누구나 다 기억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무릎이 나오게 짧아진 치마기장은 철마다·해마다 점점 짧아져서 마이크로미니니, 마이크로마이크로미니 혹은 울트라마이크로미니니 하는 새이름들을 낳키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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