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라운지] 비행기 수명 언제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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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벨기에 브뤼셀 공항에는 일주일에 한두 차례 폭격기가 뜨고 내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이 사용하던 것이다.

동구권 국가의 국기가 선명하게 새겨진 이 폭격기에는 군데군데 기관포가 설치됐던 자리까지 아직 남아 있다.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이 골동품이 브뤼셀 공항에 정기적으로 출몰하는 이유는 뭘까. 향수를 자극하기 위한 전시용 운행도 아니라면 말이다.

답은 이 비행기가 주기(자동차의 주차와 같은 개념)하는 장소에 있다. 바로 화물창고 앞이다.

새 비행기를 살 형편이 안 되는 동구 국가들이 폭격기를 조금 바꿔 화물기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운행되는 화물기는 화물칸 밑바닥에 컨테이너를 고정하는 고리가 장착돼 있다. 하지만 폭격기를 개조한 이 화물기에는 그런 장치도 없다. 화물 컨테이너가 실리면 운항 중에 흔들리지 않도록 쇠사슬로 일일이 묶어야 한다.

브뤼셀 공항 관계자는 "이 비행기는 60년 동안 사용해서 겉보기에는 구닥다리 같아 보이지만 아직까지 사고 한 번 나지 않았다"며 너털웃음을 쏟아냈다.

60년이라면 사람으로 치면 환갑 나이다. 그렇다면 비행기의 수명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항공사 관계자들은 "부품이 공급되는 한 수명은 거의 무한에 가깝다"고 말한다. 항공기 수리가 불가능할 경우에 "수명이 다했다"고 판정한다는 것이다. 다만 비행기는 안전운항을 위해 정기적으로 정밀점검을 받도록 하고 있다. 보잉사의 경우 20년 운항을 했거나 2만 회 착륙 또는 6만 시간 비행했을 경우 정밀점검을 받도록 한다. 또 기체 노후로 균열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3만 회 착륙 또는 11만5000시간 비행하면 무조건 특별점검을 받아야 한다.

이 기준을 현재 운항 중인 비행기에 대입해보자. 대한항공의 B747기는 연간 약 720회 착륙하고 3600시간 정도 비행한다. 항공기 제작사가 요구하는 정비시점에 도달하기까지는 착륙 횟수로는 41년, 비행시간으로는 32년이 걸린다. 이후에도 부품만 제대로 갈아주면 일반인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오랫동안 운항할 수 있다.

그런데도 비행기가 퇴역하는 이유는 휴대전화 교환과 같은 이치다. 신형 항공기가 생산되면 옛 기종의 부품 생산이 중단되기 때문인 것이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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