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있는 그림] 드가 '오페라 극장의 오케스트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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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르 드가(1834~1917)는 발레 연습 장면을 많이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20세 때부터 파리 오페라 극장(지금의 오페라 가르니에)에 박스석을 잡아 놓고 매일 같이 오페라와 발레 공연을 즐겼다.'파리 오페라 극장의 오케스트라'는 그가 오른쪽 맨 앞쪽 박스석에 앉아 바라본 공연 풍경이다.

중앙에 등장하는 바순 주자 데지레 디오(1833~1909)는 막간이나 공연이 끝난 후 백스테이지에서 만났던 음악가 중 한 명이다. 드가는 디오와 나중에 절친한 친구가 돼 공연이 끝나면 집까지 데려가서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다.

첼리스트 루이 마리 펠레가 뒤에 보이고 디오의 왼편으로 플루티스트 알테스, 바이올리니스트(악장) 랑시엥이 앉아 있다. 나머지 얼굴들은 음악과 무관한 친구들로 그려넣었다. 모두들 화면에는 보이지 않는 지휘자 쪽으로 몸을 향하고 있다.

마치 공연 도중 플래시를 터뜨려사진을 찍은 것처럼 묘사가 치밀한 것으로 보아 매일 같은 자리에서 유심히 관찰했음에 틀림없다. 오페라 극장에서 오케스트라 피트만큼 어두운 곳이 있을까. 보면대에 달린 전등으론 악보만 겨우 볼 수 있을 뿐이고 악사들의 얼굴 표정을 읽을 수는 없다.

드가는 오페라 극장에 대한 상식을 송두리째 뒤집는다. 이 그림이 단순히 '디오와 친구들의 초상화'로 끝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는 무대 위와 어두컴컴한 오케스트라 피트, 꿈과 상상력을 일깨우는 여가의 세계와 연주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노동의 세계, 보이는 것(발레)과 보이지 않는 것(음악)의 세계가 공존하는 곳이 오페라 극장이다.

이 두 세계를 연결하는 장치는 돌아앉은 더블베이스 주자의 머리와 툭 튀어나온 악기다. 발레리나의 미끈한 각선미와 화려한 의상을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무대 왼쪽에서 작곡가 에마뉘엘 샤브리에(1841~94)가 공연을 엿보고 있다. 이 공연이 오페라 막간에 등장하는 발레라는 얘기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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