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도 서울 가서 공부할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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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온 4학년 짜리 큰아이가 시무룩해 들어와『엄마, 나도 서울 가서 공부하고 싶어』했다. 일년 동안 단짝이던 두 친구가 서울로 가는데 저도 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곳에서 좋은 대학을 갈 수 없다고 모두들 이야기한다는 것이었다. 문득 아이의 얼굴을 보며 내 어린 날의 항구도시를 생각했다.
방학 때면 돌아오는 서울 유학생들의 깨끗한 칼러와 세련된 걸음걸이들, 또한 깔끔한 서울식의 말씨들, 매로 서울에서 방학을 지내면 도민증이라고 놀리던 아저씨의 웃음소리들, 그래서 내가 크면 꼭 서울 가서 살아야지 했던 치기 어린 그 시절을.
대학을 서울로 가면서 정감 없고 삭막한 서울친구들을 볼 때 내가 자란 여고 시절은 안개처럼 자옥하게 시야에 남고, 그 아름답던 사춘기는 이제 나이를 먹어 갈수록 소중한 보석처럼 남아 있다.
어쨌든 나는 서울토박이한데 시집을 갔다. 그런데 남편은 서울을 두고 지방에 와서 자리를 잡았다.
이제야 아빠를 탓할 마음도 없지만 서울에 몇 시간만 있으면 두통이 나 서둘러 돌아오게 된다. 이제 아이의 심각한 얼굴을 보며 유달리 야심이 많은 이 아이한데 매년 가을친구는 서울로 가고 저만 남겨진다는 것이 싫을 건 정한 아치가 아닌가. 작은 성으로 둘러싸인 인구 30만의 작은 도시에서 이들은 거의 제법 산다는 사람들의 아이들은 거의 서울로 옮겨간다.
그래서 대체로 두집 살림이 되고 아빠와 엄마는 거리에서 중년을 보내게 되는 것을 볼 때 나이가 주는 침착한 평화를 스스로 포기하고 서울로 아이를 옮기자니 헌신과 희생이 모자라는 탓인지 그럴 마음이 전혀 없으니, 일상의 날들로 끊임없이 감사하며 가꾸어 가려는 나로서는 서울이 어떤 출세의 약속도 아이에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이야기해 줄까 궁리할 뿐이다.
좋은 학군을 따라서 이사하고 심지어 기름과 세금이 적게 드는 차종을 장만하여 서울로 통학시키는 것을 볼 때 평소 성질이 급한 큰아이는 저만 남겨져 뒤처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모양이다. 이 가을 네 살 때부터 같이 자란 친구가 서울로 떠난다는 이야길 해왔을 때 들뜨는 아이의 마음을 가라앉히며 『아무리 서울로 간다해도 네가 큰그릇이 아니고선 소용이 없단다. 하느님은 그 사람의 생긴 그릇만큼만 채워 주신단다.』『엄마, 그렇지만 나는 아빠 나이엔 그보다 더 잘 살고 싶어.』
성공의 기준을 좋은 대학과 경제력에 기준을 두는 아이의 야심을 보면서, 세상은 노력해서 안될 일이 없다는 자유분방한 아이를 서울로 보내, 학교와 아파트촌을 왔다갔다하는 회색의 단조로움 속에 아이를 맡긴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작은 소도시가 갖고있는 자유로운 정적 속에 내적으로 성숙하는 사춘기를 아이에게 설명해가며, 주말이면 이 도시 근교에 널려 있는 호수에 가서 두 손에 물집이 맺히도록 배를 젖는 아이를 보는 즐거움을 누가 알겠는가. 성실한 가능성에 네 인생을 걸 때 생은 더욱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해주며 이 가을 다시 한번 남겨지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닌가. 김민자 <경기도 수원시 화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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