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 핵전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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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유럽은 요즘 제한 핵전쟁론을 둘러싸고 때아닌 회오리바람에 휘말려 있다. 며칠 전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소 두 나라 중 한쪽이 핵무기 단추를 누르지 않고도 전술무기의 교전이 가능한 지역을 알 수 있다』고 발언한 것에서 비롯된 논란이다.
유럽 서방국들은 그「가능한 지역」이 바로 자신의 발등일수도 있다는데에 공포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제한전쟁(Limited warfare)은 일명 국지전쟁이라고도 한다.
핵무기를 퍼붓는 무제한 전쟁과 비교되는 전쟁으로 그 목적이나 전투수단 또는 규모, 참전국, 교전지역 등이 한정되어있다.
이런 국지전엔 흔히 통상무기가 동원되며, 규모도 작고 강대국들은 적어도 겉보기엔 초연한 표정들이다. 다른 동네 분쟁으로 보아 넘기려는 태도다. 이른바 위성국들에 의한 대리전쟁(War by proxy)이 바로 이 경우다.
그러나 작은 시비가 큰 시비로 확대되는 것은 사소한 인간사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전세가 대국의 이해와 일치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한발, 두발 전장으로 들어서지 않을 수 없게된다.
요즘 논란을 빚고있는 한정 핵전쟁은 이런 때 일어난다. 핵 대국은 전술 핵무기를 동원해 한정 핵전쟁을 불사한다.
전술 핵이란 특정의 군사목표를 겨냥, 공격하는 무기를 말한다. 이런 점에서 대도시나 공업중심지를 파괴할 목적으로 배치된 전략 핵과는 구별된다.
핵무기를 「전략」「전술」로 나눈 것은 「단계적 억제전략」(Graduated deterrence)이론을 「키신저」박사(미전국무장관)의 아이디어다. 벌써 1957년 하버드대학 교수시절 그런 주장을 했었다.
「키신저」 교수는 전략 핵과 전술 핵 사이에 하나의 분명한 선을 그어 놓아야 전쟁이 고삐 풀린 야생마 모양으로 광란의 지경에 이르는 것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술 핵이란 이를테면 「유연한 대응전략」의 산물인 셈이다.
이미 유럽에는 이런 이론에 근거한 전술 핵무기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랜스」나 「어니스트·존」, 「퍼싱」미사일 등은 우리 귀에도 익은 전술 핵들이다. 우리 나라 「국군의 날」 퍼레이드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유럽 서방국들은 바로 이 전술 핵무기에 의한 전쟁에까지도 알레르기를 갖고있다. 어쨌든 핵은 싫다는 무드인 것 같다. 비록 국지전일지라도 그것이 전술 핵에 의한 전쟁이면 전면전 또는 대규모 핵전쟁으로 확대될 것은 정한 이치라는 생각이다. 이지경이 되면 물론 인류는 전멸의 위기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바로 그 점이 전쟁을 억제하는 기능도 한다는 데에 있다. 힘의 균형이 그것이다.
「레이건」은 힘의 균형을 걱정하는 것이지 전쟁을 해서 이기겠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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