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공무원과 출장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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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월급장이 세계에서「출장」이라면 속박에서 풀려나는 뜻한 기분과 함께「출장비」는 월급 외의 공돈이 저절로 굴러오는 듯한 착각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사실 몇해 전까지만 해도 관가에서는 출강비가 현지출장을 의한 경비가 아니라 공무원 처우개선의 한 방편으로 이용되곤 했다.
흔히「앉은뱅이 출장」, 혹은「안방출장」이라고 불리던 게 바로 그것이다.
몸은 직장을 계속 나오는데 서류로는 팔도강산을 다니는 걸로 된다. 이런 현상은 어느 부처·어느 기관을 막론하고 공통현상이었다.

<국·과의 비용으로도>
과나 국의 직원들은 도장을 전부서무에 맡기고 서무가 필요에 따라 출장명령을 서류로만 낸다. 어느 현업부처에서는 한달 내내 과직원 모두가 계속 출근을 했으나 출근부에는 출근도장이 절반도 찍히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출장 갔다는 사실을 서류로 맞추어 놓기 위해서였다.
매달 이런 방법으로 모은 출장비를 일부는 과의 판공비로 쓰고 나머지는 월급날 직급에 따라 사이좋게 분배했다. 하급기관에, 대한 감독업무가 많은 곳일수록 배당액이 많아 어떤 때는 월급액수와 비등한 경우마저 있었다. 물론 이 배당금속에는 출장비 이외에 사무용품비·도시비등 수용비를 실제 지출하지 않고 지출한 것 처럼 꾸민 부분도 들어 있었다.
당시에는 예산이 현실화돼 있지 않은 이유도  만 장차관을 제외하고 판공비를 일체 인정하지 않았던 관계로 과나 국에서 공적으로 쓰는 돈을 이런식으로 충당할 수 없었던 고충이 있었다.
따라서 과장·국장의 인수인계 때는 과「빚」을 놓고 인수를 하라거니 못하겠다거니 하는 다툼이 흔히 있었다는 것이다.
각부처의 살림을 맡는 총무과장은 이런 예산전용 때문에 일단 감사원감사만 있었다하면 걸려들 수 밖에 없어 어떤 사람은 아예 총무과장직을 사양하기도 했다. 예산을 주무르는 경제기획원도 각 부처의 이런 약점을 알기 때문에 일반예산을 여비로 전용시켜 줄 때는 과나 생색을 내곤 했다.
J국무총리시절에 국회에서 이같은 예산전용 문제를 들고 나오자 J총리는『나도 총리가 되기 건에는 그것을 꼭 시정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들어왔으나 와보니 현실적으로 어렵더라』고 대답했을 정도로 고질적인 문제였다.
75년 서정쇄신 바람이 불면서 고박정희대통령이 각부처가 안고있는 빚을 일제히 신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부처에 따라서는 문제를 삼을까봐 적게 신고하는 예도 있었다. 박대통령은 자진 신고한 액수만큼 정부가 빚을 갚아주는 대신 앞으로 예산전용은 일체허용하지 앉는다는 엄명을 내렸다. 그때부터 정부의 여비 전용풍조가 사라져 이제는「앉은뱅이 출장」풍조는 완전히 없어졌다.
공무원들의 여비는「국내외여비규정」이라는 대통령령에 의해 지급된다.
여비안에는 운임·현지교통비·숙박료·식비·식탁료가 포함되어 있는데 직급에 따라 9동급으로 나누어 있다.
대통령으로부터 국무위원급까지가 받는 특호의 경우 철도·선박·항공의 1등 요금에다 1일 숙박료 1만2천6백원·식비 5천원등 최고 2만1천6백원을 받게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장관이나 총리가 출장을 갔을 경우 이 돈으로는 태부족이다.
중앙부처의 과장급이 받는 3호봉의 경우 새마을호 보통질의 요금에다 1일 숙박비 7천4백원·식비4천5백원등 최고 1만4천7백원을 받을 수 있다. 제일 말단인 9급 공무원의 경우 우등열차 보통 실에다 숙박비 5천2백원·식대 4천원 최고 1만1전5백원을 받는다.
현실적으로 이 금액을 가지고는 깨끗한 여관에 들기도 힘들지만 생활이 어려운 하위직 일수록 이 경비도 절약해 가계에 보태는 경우가 흔히 있다고 부처에 따라서는 출강비가 진짜 부족할 것이 예상되면 3박출장건을 5박으로 끝는다 든가 하는 융통성을 발휘하는 경우가 있다.

<지정 숙박소도 마련>
해외여비의 경우 규정상 3급 (부이사관)이상은 모두 1등 항공요금을 받게되어 있으나 실제로 2, 3급 공무원의 경우는 ▲장차관 수행 ▲국제회의 수석대표파견 ▲공관장 신분으로 여행할 때 ▲대외직명공사로 출장할 때에만 1등 요금을 받는다. 외국출장의 경우도 지역에 따라 금액의 차이가 있는데 국장급이 유럽에 출장 갈 경우1일 숙박비 55달러·식비 45달러·체재비 20달러등 모두 1백20달러를 받는다.
여비지급액에 따라 각종 공무원의 직급을 간접적으로 비교할 수도 있다.
대학총장은 특호다호급으로 국무위원과 같이 예우를 받고 단과 대학장·교육감·지방검찰청검사장 등은 차관의 예우를 받게 돼있다.
대학교수·2∼5호봉 검사등은 2급 공무원의 대우를 받고 대학조교수·중고교장·장학관 등은 4급(서기관)대우를 받게 되어있다.
정부는 지난해 6월 파격적인 여비 현실화를 했으나 국내여비의 경우는 아직도 미흡하다는 얘기가 많다.
총무처는 보완조치로 전국에 공무원 지정숙박업소를 정해 숙박비의 30%를 할인해 주는 제도를 마련했다. <문창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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