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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이 바로 취업 … 현장교육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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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2004년 교육부가 주도해 계약학과라는 이색 학위과정이 도입됐다. 기업이 각 대학과 운영계약을 체결해 산업체에 맞는 인재를 대학에서 배출한다는 취지였다. 학과를 신설하거나 기존 학과의 교과목을 기업 현실에 맞게 조정하는 방식이었다. 삼성전자와 계약한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 휴대폰학과가 대표적이다. 그러다 2008년 평생교육법이 개정되면서 사내대학의 학위과정을 인정해줬다. 대우조선 해양공대, LH토지 주택대학이 그것이다. 2012년에는 고용노동부가 기업대학을 권장했다. 기업대학은 재직자나 채용예정자의 직업훈련을 기업 스스로 해결토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LG전자 기업대학, 현대백화점 유통대학, 한화 기업대학이 정부 정책에 호응해 설립됐다.

 이런 제도를 정부가 도입한 가장 큰 이유는 현장과 교육이 동떨어져 청년들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어서다. 기업도 신입사원을 채용한 뒤 1인당 평균 6088만원을 들여 1년 6개월동안 교육시켜야 하는 부담을 감수해야 했다(한국경영자총협회). 그래도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청년 실업률은 지난해 8%로 평균 실업률(3.1%)의 세 배에 육박했다. 또다른 문제는 자금력이 있는 대기업이나 가능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난해 고용부를 비롯한 범 정부차원에서 내놓은 게 일·학습 병행제다. 기존의 계약학과, 사내대학, 기업대학을 통합하면서 기업의 생산현장을 고교와 전문대의 실습장으로 활용토록 한 형태다. 고교생 또는 고졸자가 돈을 벌면서 학위나 자격증을 따도록 한다는 취지다. 교육과 작업현장을 일체형으로 묶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산업현장에서 실습할 수 있기 때문에 자체 교육장을 마련하기 힘든 중소기업 참여 문호가 넓어졌다.

 실제로 지난달 말까지 일·학습병행제에 참여한 기업은 1730개에 달한다. 상시근로자 1000명 이상 대기업은 11개 업체에 불과하다. 중견·중소기업의 호응이 높다는 얘기다. 이들 기업이 일·학습병행제를 통해 한 해 채용하려는 인원은 9461명에 달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생태계 조성 움직임도 일고 있다. 롯데그룹이 그 첫발을 뗐다. 롯데는 16일 잠실 롯데월드에 1468㎡ 규모의 글로벌 아카데미를 설립해 내년 3월 문을 열기로 했다. 롯데호텔, 롯데칠성음료, 스카이힐과 같은 롯데 계열사 뿐 아니라 청소용역, 인력파견, 건물관리와 같은 롯데그룹의 협력업체까지 이용할 수 있다. 취업하려는 학생을 이곳에서 교육시키고, 현장에 곧바로 배치(정규직 채용)한다. 평가를 거쳐 국가공인자격증도 수여한다.

 삼정데이터서비스, 솔트웨어, 대웅제약, 노루페인트, 테라젠테크 등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막론하고 공동훈련센터를 설립해 이런 과정을 도입 중이다.

 각급 학교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한국기술교육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학습체계를 구축해 기업에 제공하고 있다. 폴리텍대학은 산업단지별 특성에 맞게 자격증과 학위과정을 개발했다. 정부는 특성화고교와 기업군이 컨소시엄을 이룬 형태의 도제식 특성화 사업단 공모에 들어갔다. 한국기술교육대 임경화 평생교육원장은 “자격증이 있어도 취업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현장일체형 교육이 이뤄지면 자격 자체를 현장형으로 바꿔나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용부 나영돈 직업능력정책관은 “이 제도가 정착되면 고교나 전문대 등에 재학 중인 학생은 학력과 상관없이 정규직으로 채용되고, 직무 수준에 맞는 임금과 승진이 보장된다”고 말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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