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구석 언급 됐지만…|국회본회의 질문-답변을 채점해 보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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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5일 당대표연설에 이어 시작된 국회본회의 대 정부질문은 14일 사회문제에 대한 질문을 마지막으로 6일간의 일정을 모두 끝낸다.
당대표를 포함한 23명의 발언자들이 과연 새 국회 상 정립이란 과제에 부응할 만큼 충실한 질문을 제기했는가, 정부측의 답변은 성실했는가 라는 문제를 놓고 볼 때 한마디로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전반적으로 볼 때 의원들의 발언내용은 과거에 비해 상당히 충실해졌다는 점에서는 진일보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정치·외교·안보 ▲경제 ▲사회 등 3개 의제마다 40∼50가지 이상의 질문이 나왔고 국공 전 분야에 걸쳐 언급되지 않은 구석이 없을 정도였다.
최근 논란을 빚은 저질연탄문제, 피의자 장기연행조사에서부터 평화적 정권교체, 통일문제까지 평범한 분야가 거론됐고 질문내용에서도 의원들의 애 쓴 흔적이 뚜렷이 나타나고있다.
그럼에도 어딘가 미진한 데가 남아있는 것 같다는 것이 의원자신들의 일반적 견해인 듯 하다.
분야별로 제기된 주요문제들은 ▲정치문제에 있어서 유신잔재의 청산, 개혁입법 개폐문제, 언론자유, 정치활동 규제자 문제, 지방자치제실시문제 ▲경제분야에서는 소득의 균형분배, 5차5개년 계획의 수정, 교육비를 비롯한 세제개편문제, 외채, 추곡수매가, 외미과잉 도입문제 ▲사회문제에서는 역시 언론·지방자치제문제와 함께 빈부격차, 노사문제 등이었다.
민한당은 유치송 총재의 대표연설에서부터 유신잔재의 청산과 국회법·언론기본법 등 개혁입법개정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민한당 측이 새삼 유신체제를 끄집어낸 것은 과거를 빌어 현재를 비판하는 우형전법으로 해석됐다. 또한 국회법 등 입법회의를 거친 법률의 개정문제를 거론함으로써 정치적 공세와 야당성 부각의 실마리를 풀어 보자는 의도였던 것 같다.
그러나 민정당이 의총이란 형식을 빌어 개혁입법 불개정 원칙을 재확인하고 국회의 앞날을 「걱정하는」민감한 반응을 보이자 당대표 연설에서 보였던 총론적 비판기세는 대정부 질문의 각론에 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산발적인 포격으로 그쳤다. 정치문제에 관한 한 대정부 질문의 수위는 당대표 연설이 상한선이 된 셈이다.
이에 반해 경제·사회의 일부분야에서는 여야가 정부공격에 공동보조를 취하는 색다른 현상을 빚었다. 즉 소득의 불균형, 5차 5개년 계획의 수정, 외채문제 등이 그것이다. 여야의원들은 현재의 소득불균형이 70년대 고도성장의 결과이며 5차 계획에도 시정책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물론 그 뉘앙스에서까지 여야가 일치했던 것은 아니다.
민정당 측은 소득의·불균형이 정의사회구현이란 국정지표에 어긋나며 복지정책을 더 반영토록 정부측에 촉구하는 입장이었다. 민정당 측은 현 내각의 개혁의지가 미흡함을 강조하려 했다.
이에 비해 민한당 측은 현 내각의 구 시대와의 연속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정치공세의 일환으로 몰아가고 정부의 정의사회구현 노력의 슬로건 적 측면을 부각시키려했다.
민정당 의원들의 질문내용은 광범한 정보를 바탕으로 상당한 전문성을 과시했다. 반면 2O개이상의 질문을 나열해 질문을 위한 질문이 되고만 경우도 있었고 전반적으로 「자기목소리」가 약했다는 느낌을 주었다.
민한·국민당 등 야당 의원들은 정치적 연관성 위에서 질문을 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그러나 당의 통제가 느슨한 만큼 개인적 자질에 따라 발언수준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였으며 자기 말이 아닌 남의 원고를 「대독」하는 의원도 있었고 지나치게 지역구를 의식한 발언이 나와 빈축을 사기도 했다.
정부의 답변태도는 종전의 수준을 넘지 못했다는 게 중평이다.
의원들의 질문에 『검토해 보겠다』『관계부처와 협의해보겠다』는 식의 답변방법은 지양되었지만 핵심을 벗어난 장황한 답변으로 넘어 가려는 각식답변 기교는 별로 교정되지 않았다.
특히 최종결재가 나지 않은 내용을 공표 할 경우 책임을 지게된다는 관료적 경직성 때문에 본회의 답변에서 1건의 새로운 정책제시도 없었던 것은 정말 아쉬운 일 이었다. 검토되고 있는 내용과 과정을 알림으로써 함께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조성을 정부측에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였음이 드러났다.
6일간의 질문·답변에서 정치일변도의 발언, 인기발언은 크게 줄었고 과거와 같은 폭로전술이나 의원발언에 대한 야유·고함도 적어졌다.
이 같이 소극적으로 무엇이 고쳐져야 하느냐는 측면에서는 새로운 국회스타일이 어느 정도 정착되어 가는 것 같다. 그러나 적극적인 차원에서 어떤 발언이 새로운 국회 상에 걸 맞는 가는 아직도 제대로 부각되지 않고 있다.
전문적이고 정책적인 질문만으로 족한 것인가. 그러기에는 국회에 대한 인식이나 일반적인 현실인식과의 갭이 아직 크다.
또 정부측의 성실한 자세가 결여되어 있으면 국회 혼자서만 충실을 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적극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국회 상은 여전히 모색단계에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민의가 충분히 수렴되고 활발한 토론이 이뤄져야 국회가 활성화한다는 평범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국회는 국민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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