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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3235> 제75화 패션 50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필자가 파리에 간것은 의상디자이너로서 자신을 발전시키려면 전세계의 유행을 좌지우지하는 모드의 본고장 파리의 동향을 정확히 알아야겠다는 목적에서였다.
그러므로 필자가 파리에서 가장보고 싶었던것은 루브르박물관이나 베르사유 궁전이 아니라 당대 일류 디자이너들의 컬렉션발표회였다.
당시 파리에서 활동하고있던 조카(시누이 申愛均씨아들) 피터 玄(문필가)이 귀한 초대장을 구해줘서 꿈에도 그리던「디오르」와「카르댕」의 컬렉션들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었다.
마침 파리에 체류중인 李世得화백과 鄭忠良씨(淑明女高교장)를 만나 동행을 했는데 거장들의 기발한 작품들을 눈앞에 보면서야 비로소 자신이 파리에 와 있다는 것이 실감되었다.
쇼는 세계 각국에서 온 복식관계 바이어를 위한 것인듯 상점 입구에서 주문카드와 연필을 손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쇼의 진행도 한국에서처럼 넓은장소에서 한꺼번에 모든 손님들에게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오트쿠튀르 (haute couture=고급의상점이란 뜻의 佛語)에 있는 여러 방에서 동시에 진행되었다.
의상을 입은 모델(프항스 사람들은 마네킹이라 부른다)들이 번호표를 들고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다니며 손님들 앞을 지나가는데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으므로 디자인의 특성을 파악하는데 매우 편리했다.
손님들중 바이어로 추측되는 이들은 그때그때 마음에 드는 의상의 번호를 주문 카드에 적었다가쇼가 끝난뒤 오트쿠튀르측과 商談을 벌이는 모양이었다.
「디오르」나 「카르댕」처럼 파리에서도 손꼽히는 유명한 오트쿠튀르에는 「이브·생· 로람」이나 「피에르·카르댕」같은 최고책임자밑에 여러명의 모델리스트(modelist=파리에서는 디자이너를 이렇게 부른다)들이 있고 이들이 창안해내는 새로운 모드는 수십년 경력을 지닌 일급재단사들로 구성된 아틀리에에서 완전한 의장으로 만들어져 나온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오트쿠튀르의 인기는 계절마다발표하는 컬렉션의 결과 여하에 따라 평가를 받게 되므로 소속 모델리스트들이 머리를 짜낸 뉴모드가 사전에 새어나가지 않도록 자체내의 보안조치도 대단하다고 한다.
그런데 유독 「코코·샤넬」만은『나의 의상 디자인은 전세계에 입히고 싶은 것이니 얼마든지 모방해달라』며 오트쿠튀르 조합에도 가입하지 않았다는 말도 들었다.
당시 파리에서 일급으로 꼽히던 오트퀴트르는 「디오르」와 「카르댕」을 위시해서「지방시」,「니나」,「리치」,「발렌시아가」등의 상점으로 이 판도는 2O년이 지난 지금도 별 변동없이 그대로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 같다.
이처럼 오트쿠튀르의 생명인 인기를 오래 지속하면서도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모델리스트의 세대교체를 통해 참신한 아이디어를 개발해내는것이 비결이라는등 파리패션계에 대해 새로 알게된 사실이 너무도 많았다.
이처림 패션계가 하나의 중요한 수출산업으로서 방대하고 왕성하게 움직이고 있는 사실은 필자에게 하나의 큰 충격과도 같았다.
거리를 오가는 간편한 차림의 평범한 여인에게서도 뭐라고 꼬집어말하기 힘든 멋과 매력이 스며나는 것을 보며 파리가 세계의 여성 패션을 리드하는 저력이 바로그런 국민적 특성때문인가 보다고나름대로 생각을 모아보기도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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