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名門大學의 韓國학생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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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베를린이 2차대전후 束西이데올로기의 접점이자 분단獨逸의 상징으로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있듯이 자유베를린대학(Freie Universitaet Berlin 33)역시 그런면에서 西獨대학중에서 유독 색다른 체취를 풍긴다.

<美國의 지원으로 창설>
원래 베를린대학이 蘇聯점령지역인 東베를린에 있는 탓으로 공산주의의 영향력 아래 놓이자 학문적자유를 갈구하는 교수와 학생들이 西베를린으로 넘어와 美국의 지원아래 새로운 대학을 세웠다. 설립당시 재정은 물론 교육내용이나 학교체제까지 美國영향을 받은 탓으로 자유베를린대학은 전통적 句逸대학과는 여러가지로 다른 풍모를 지닌다.
『학문의 다양성, 자유분방한 분위기및 실용적인 교욱체계등은 獨逸대학의 中世的잔재를 정리하고 대학교육제도를 개혁하는데 공헌했다』는 것이 18년째 이대학 동양학연구소에서 강의하고 있는 全熙洙교수의 말이다.
개교당시 獨逸의 저명한 학자들이 모여들고 60년대말기 격렬한 학생운동으로 새로운 사상운동의 구심점이 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격렬했던 학생운동의 후유증으로 적지않은 진통을 겪고있다.
당시 많은 교수들이 학생들로부터 保守的이라는 공격을 받고 대학을 떠났기 때문에 학문적으로 능숙한 교수와 강사진이 부족한 편이다. 그러나 학문의 다양성에서만은 獨逸의 어느대학도 이 대학을 따르지 못한다.
단과대학격인 학부가 16개로 세분돼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다양성을 엿볼 수 있다. 醫學部만해도 예과까지 3개의 학부로 나누어져 있고, 흔히 哲學部에 소속되는 문학·역사·사회과학분야들도 각기독립학부로돼있다(기초의학부·제1의학부·제2의학부·치의학부·수의학부·커뮤니케이션학부·경제학부·정치학부·교육학부·역사학부·고전학부·獨문학부·외국어학부) .

<西獨에서 가장 큰규모>
이처림 다양한 학교인 탓인지 학생수도 4만5천명, 교수진 5천명(교수 1천명·강사 4천명),교직원 1만명으로서 규모로는 西獨에서 가장 큰 대학이다.
현재 이 대학에 등륵중인 韓國人은 83명인데 실제로 學部에서 전공과목을 공부하는 학생은 43명이며 나머지는 입학허가를 받기 前단계인 어학과정에 등록하고 있다.
전공별로는 政治學 5명, 경제학 5명, 사회학 5명(전원 여학생)씩등으로 비교적 많은 편이고 醫學·약학전공이 각각 2명씩이다.
특이한 현상은 어느 대학이나 있게 마련인 獨文學전공 韓國학생이 한명도 없다는 점이다.
『옛날에는 獨文學전공이 주류를 이루고 다음이 정치학·경제학의 순이었으나 요즈음은 오히려 전에 드물던 자연과학 분야의 학생이 늘어나는 추세』라는 것이 全교수의말.
공부를 시작해서 끝내기까지 韓國학생들이 겪는 어려움도 다른대학에서 겪는 어려움과 마찬가지다. 학교분위기에 차이가 있을뿐이지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기본요건은 베를린이라고해서 다를게 없다.
요즈음에는 외국학생들의 입학요건인 어학교육을 1∼2년씩 받은후에도 시험에 불합격해 귀국하는 학생이 학기마다 2∼3명씩 된다고 孫영호씨(37·경제학)의 말이다.
이처럼 언어때문에 대학문턱에서 되돌아서게 되는것은 西獨의 각대학들이 너무 많은 외국학생들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에도 원인이있다.
등록금 안들고 기숙사나 방값이라해야고작1백50∼3백마르크(4만5천∼9만원)에 생활비 4백∼5백마르크(12만∼15만원)밖에들지앉아 獨逸대학에 대해 군침을 많이 흘리겠지만 이제는 獨逸도 인색해지고 있다는것이 유학 3년째인 權병주씨의 말이다.
『獨逸이 나치의 이미지도 씻을겸 친선도 도모하고 국력을 과시하기위해 많은 유학생을 받아들이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5년째 언어학을 공부하고 있는 金진수씨(32)의 말이다.
따라서 韓國학생들이 앞으로 獨逸대학에 입학하려면 점점 좁아지는 문을 뚫을만한 학력과 능력을 갖추어야한다고 했다.
자유베를린대학에서 지금까지 박사학위를 받은 韓國학자는 15명으로 獨文學의 韓鳳欽 (고려대), 具翼星 (본대학), 新問學의 崔禎鎬(연세대), 경제학의 朴衒作(成大), 정치학의 金우연 (부산산업대) 교수등이다.<베를린=특파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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