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집값 못잡는 '투기지역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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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올해부터 도입한 투기지역 제도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행정수도 이전 기대감으로 집값이 많이 오른 대전시 서구.유성구와 천안시를 투기지역으로 첫 지정했으나 그 후에도 이 지역의 집값이 계속 올랐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천안시 집값은 3월에 5.1% 급등했다. 이는 3월 전국평균 상승률(0.7%)의 7배를 넘는 것이다. 대전시도 1.8% 올랐다.

이에 대해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는 "시중에 갈 곳을 못찾는 돈 일부가 부동산으로 몰리고, 특히 정부가 행정수도 이전 방침을 거듭 밝히면서 결과적으로 투기 수요를 부채질한 셈이 됐다"며 "금리 조정이 어려운 만큼 투기지역 지정을 강화하는 등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는 가격이 계속 상승할 가능성이 작다며 투기지역 지정 자체를 미뤄 안이한 대응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올들어 세 차례 열린 부동산가격안정심의위원회(위원장 재경부차관)에는 총 15개 시가 주택 부문에서 투기지역 지정 요건을 갖춰 대상에 올랐으나 실제로 지정된 곳은 대전시와 천안시 두 곳뿐이었다.

청주시는 3월 집값이 전국 평균의 9배인 4.6%나 뛰었는데도 투기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았고, 창원시는 세 번, 수원시는 두 번 투기지역 후보에 올랐지만 역시 지정되지 않았다.

토지 부문에선 81개 시.군이 투기지역 요건에 해당됐지만 단 한 곳도 지정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토지 투기지역은 건설교통부의 1분기 지가동향 통계가 나오는 5월 이후에나 지정이 가능할 전망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투기지역을 한꺼번에 지정할 경우 어려운 경제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걱정하는 의견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성린 한양대 교수는 "투기지역을 엄격히 지정해도 전체 경기에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오는 25일 서울 강남구와 인천 중구.광명.청주 등을 대상으로 투기지역 지정 여부를 다시 심의한다.

투기지역=양도세를 기준시가가 아닌 실거래가로 중과(重課)하는 지역이다. 이렇게 되면 양도세 부담이 1.5~2배 늘어난다. 주택 투기지역과 토지 투기지역의 두 가지가 있다. 주택 투기지역의 경우 정부는 매달 '직전 2개월 주택가격상승률이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전국 평균 주택가격상승률보다 30% 이상 높은 지역'을 대상으로 심의한다.

고현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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