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로 뒷골목엔 지저분한 빈민촌"|외국기자가 둘러본 북한의 도시와 농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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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원산 (북한)16일AFP=본사특약】동해안에 위치한 인구 23만 명의 원산은 첫눈에 보기에 깨끗한 인상을 주고 있다. 북한에 도착하는 대부분의 외국선박들은 새로 지은 20층 짜리 빌딩이 서있는 원산항에 정박하는데 바로 그 뒤쪽부터는 가난하고 지저분한 빈민촌이 펼쳐져 있다.
김일성 동상이 서있는 부두에서 바라보면 원산과 그 해변은 마치 해변의 휴양도시처럼 보인다.
그러나 불과 10여m만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안내자가 따라붙는 관광코스에는 들어가 있지 않지만, 더럽기 짝이 없는 건물과 창문마다 빨래가 걸려있는 사이에 난 포장도 안된 골목길에서 놀고있는 더럽고 지저분한 어린이들을 만나게 된다.
북괴는 4년 전 1천7백50만 인구의 이 나라가 『인민의 낙원』이 됐다고 선언했다. 외국인들을 위해 발행한 『인민의 낙원』 이란 제목의 사진첩에는 평양의 한 고층 아파트의 발코니에서 웃음 띤 얼굴의 주부가 꽃을 돌보는 사진이 『집집마다 행복한 웃음이 가득』 이란설명과 함께 실려있다.
사진들과 함께 실린 기사에는 김일성이 집권한 뒤 생활여건은 나아졌으며 『아무도 의식주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졌다』 고 강조했다.
그러나 열흘동안 북한을 방문하면서 필자는 북한 내 대부분의 도시와 마을에 빈민가가 있으며 이런 곳의 생활환경은 외국인들에게 공식적으로 보여주는 협동농장의 그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를 안내한 통역은 좀처럼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옛 왕도였던 인구 10만의 개성시의 아파트들은 일반적으로 조그마한 방들을 갖고 있었는데 벽은 지저분했다.
평양에서조차 외국인들은 운전사들이 안내로를 따라 속력을 내서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아파트 빌딩을 힐끔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1년 수입은 3천8백40원(약1천9백20달러· 한화l백34만원). 여기에는 당국이 제공한 교육비·의료비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액수는 내가 안내되었던 평양시내 한복판의 3O층 빌딩에 사는 발전소직원이 받는 액수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아파트는 널찍했었는데 개성이나 원산의 가난한 층에서는 보기 힘든 가사 도구들이 있었다.
내가 찾아갔을 때 발전소 직원인 집주인은 일나가고 없었는데 부인 한종상씨는 남편의 작년 수입총액이 2천2백80원 이었다고 말했다.
평양근처의 한 국영농장보육원에는 원아가 2백59명에 보모가 20명이 있었는데 보모는 어린이들에게 『자애로운 김일성 원수의 아들·딸들답게 노래하자』고 가르치고 있었다.
우리는 또 38선 이북의 금촌 부근의 한 마을에 안내되었다. 홍수 때문에 간선도로가 침수되어 우회해서 도착한 이 마을의 어린이들은 원산의 빈민가의 어린이들과 마찬가지로 가난에 찌든 모습이었다. 마을의 집들은 오두막집보다 조금도 나을게 없었다. 김일성 정권은 끊임없이 북한을 지상의 천국으로 선전하고 남한을 그 반대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김일성 정권이 북한체제를 세계에서 가장 완벽하다고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양거리에는 술 취한 사람이 어슬렁거리고 있었고, 산길 가에는 누더기 차림의 한 늙은 여자가 풀을 뜯고 있다. 개성의 어두운 거리에는 다정한 젊은 연인 한 쌍이 손을 잡고 거리를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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