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부모사탕의 몇 분의 일 인들 갚을까"|계란 들고 아들집 가는 시골어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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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분망한 아침시간이 자나고 오늘도 여느 때처럼 아기를 둘러 업고 저녁 시간에 대비해 여유 있게 시장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오늘따라 왜 그리 더운지 등에서 우리아기는 힘에 겨워 끙끙대고 나는 한 손에 든 시장바구니가 힘에 겨워 끙끙대며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오고 있는데 일흔이 넘어 보이는 형색이 초라한 시골할머니가 한 손에는 보따리를 들고 또한 손에는 그야말로 옛날 시골에서나 보아오던 짚 꾸러미에 열 개씩 꼽게 엮은 계란을 두줄이나 조심스레 가지고 오셨다.
불현듯 시골에 계시는 어머니 생각에 콧등이 찡하여 할머님께 조심스레 말을 건네 보았다. 어디를 가시며 생활은 어머시길래 힘들게 계란을 가지고 오시느냐고 했더니. 할머님 말씀이 자식은 건설회사에 다니며 그린대로 생활은 윤택한 편이란다. 그런데, 집에서 낳은 계란을 모아 두었다가 자식과 손자가 보고 싶어 올라 오는 길에 가지고 오신 거란다. 그러면서 한 마디 하시는 말씀이『자식들은 어미 맘을 모른다우. 자나깨나 부모는 자식걱정에 마음 편할 날이 없지요.』 힘없이 하시는 그 말씀이 마치 자기생활에만 전념하는 젊은이 시대에 경종을 울리는 듯했다.
그래, 자신이 너무했구나. 내 어린 생명 소중한 줄은 알면서 나를 항상 염려하시는 부모님께는 소홀히 했다는 죄책감이 온몸을 아프게 죄어온다. 흔히들 정이란 무한 정한 것이라고 한다. 그 흔한 점 중에서 가장 뵙고 가장 선이 굵은 것이 부모에 대찬 정이 아닌가 한다. 요즈음 나는 인생의 길을 자주 생각하는 편이다. 생각한다기보다 뼈가 으스러지도록 무거움을 느낀다.
나의 이 육체와 정신을 길러준 그 은혜는 어느 세상을 가도 없다. 한 해, 두 해 연륜이 더해 갈수록 가슴속에는 차곡차곡 접어 넣어든 고마움을 느낀다. 내 나이 스물 여덟에 접어들고 보니 더욱 그러한 감정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전해오는 얘기로 옛날 초 나라에 노래자라는 사람은 늙은 양친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70나이에 색동옷 입고 어린 아이 처럼 어리광을 부렸다고 한다. 또 명나라 왕상은 두꺼운 얼음을 체온으로 녹여 잉어를 잡아서 병상의 계모에게 바쳤다는 얘기도 있듯이 효도는 부모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는데 있나보다. 부모의 사랑은 진정 무거운 것이다. 효도란 인간이 가져야 할 삶의 기본 질서이거 늘 내가 내 자식을 사랑하는 것의 몇 분의 일을 부모님을 위해 생각하는가 돌이켜 보면 송구스럽기 한이 없다.
나를 사랑해주신 지난날을 반추해보며 이미 황혼기에 계신 양가 부모님의 노후를 이제라도 지성으로 모셔야 겠다는 뒤늦은 깨달음이 한없이 철없는 자신을 부끄럽게 한다.<서울영등포구영등포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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