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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측 당당한 자세에 일측 당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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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좁은 의미로는 결렬된 셈
-양쪽 국민들의 시선이 날카롭게 쏘아보는 가운데 열렸던 제11차 한일각료회담이 공동성명발표도 없이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 같은 마무리가, 우리가 제기한 안보경협 문제에 대한 결렬을 뜻하는 것이냐, 아니냐를 두고 논의가 있는데 어느쪽입니까?
-가장 핫이슈였던 안보경협 60억달러가 타결되지 않았으니 좁은 의미에서 보면 결렬이란 주장을 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결렬이라고 하면 현안이 완전히 타결 여지가 없이 소멸된 것을 뜻하는데 「계속협의」키로 했으니까 「결렬」이라고 말하는 건 무리죠.
-그렇죠.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회담에 진전이 없었다. 미결상태로 남았다고 해야겠죠. 노신영의무장관이 회담이 결렬된 것은 아니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파악해야하며 일본측도 그 점은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회담의 성과는 어때요.
-피차 자기의 명분과 주장을 견주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것과 일단 「안보경협」을 협의할 창구를 공식화했다는 점을 꼽고 싶습니다.
-엄격히 말해 서로 얻고 잃은 것이 없다고 하겠으나 굳이 우리쪽에 유리한 해석을 한다면 맨 처음 일본으로서는 가상의 차원, 또는 쇼크로 받아들였던 60억달러 경협문제가 타협해야 할 대상으로 부각된 점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일본측은 안보와 경협을 링크시키는데 심한 반발을 보이고 있으며 쉽사리 고집을 꺾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양측간 논리의 갭이 무척 깊다는 얘기군요.
-그래도 결국 안보경협은 다른 명목으로 싸서라도 일본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될 카드 아닙니까.
-그래요. 사실 안보경협은 한국이 처음 제기한 것이 아니라 일본 스스로가 미·일 공동성명과 오타와 정상회담선언 등을 통해 서방제국에 약속한 것이지요.
-일본이 GNP의 0·9%만을 방위비로 투입하는 이른바「공짜안보」를 만끽하고 있는데 지난번 오타와 서방정상회담에서 서방국들은 이 문제로 일본에 집중 공격을 했다고 해요.
-미국이 GNP의 5%수준, 프랑스가 3·6%, 독일이 2·7%, 영국이 6·2%수준의 국방비를 쓴다는데 이런 나라들이 공짜안보의 여력으로 시장을 잠식해 들어오는 일본을 괘씸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기도 해요.
-일본안에는 최근 더 이상 이와 같은 안보 회피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안보와 경협을 묶어 얘기할 수 없다는 이유는 뭡니까.
-안이한 안보관에 평화헌법을 방패로 경제적 실리 추구에 재미를 보았거던요.

<경제보리 계속 추구할 듯>
-결국 일본은 안보경협이라는 한일간의 명제만은 아닌 자유진영의 공통문제제기를 가능한 한 형식적인 성의표시로 메우고 경제 실리추구를 계속하겠다는 심산이죠.
-60억달러라는 경협규모에 대해서 얘기해 보죠.
-안보경협자체는 지난 2월 한미정상회담 때 「레이건」미대통령이 전두환대통령에게 한국의 동북아지역에서의 안보역할 평가와 이에 따른 파중한국방비부담을 가급적 덜어줌으로써 한국의 안정적인 방파제 역할 수행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1%늘려도 백50억달러>
-가령 일본의 GNP가 80년기준 1조5천억달러 정도인데 이 가운데 l%만을 방위비로 증액한다해도 1백50억달러입니다.
-우리가 공공차관 60억달러를 요청했지만 따로 제기한 일수출입은행(JEXIM)차관 40억달러를 합치면 1백억달려죠.
-국교정상화이후 누적된 2백12억달러의 무역적자와 비교해봐도 60억달러는 28%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일본은 군사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경제협력은 안 된다는 일관된 고집 아닙니까.
-안보 따로 경제 따로 논리인데 우리나라 같은 상황에서는 경제안정이 곧 안보입니다. 일본의 안보경협 불가주장은 경협을 하지 않으려는, 한다 해도 생색만 내자는 속셈이죠.
-일본이 민생안정·사회개발 등 자기네 경협기본원칙을 들고 나왔읍니다만 이것도 국내용입니다. 그들은 이미 미국과 서방진영의 압력에 따르기 위해 ODA자금을 종합안전보장이라는 명목으로 향후 5년간 2배로 늘려 놓았습니다. 저개발국의 민생안정지원을 위해 늘린 것이 아니라 안보역할분담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늘린 것입니다. 그 늘어난 ODA자금 2백14억달러 가운데 60억달러 (연간 12억달러)를 한국의 방위역할 부담을 가볍게 해주기 위해 일본이 쓰라는 얘깁니다.
-이틀간의 각료회담은 알맹이보다는 팽팽한 대결로 시종한 셈이죠.

<〃쿠데타쯤 되는 것 같다.>
-일본의 어떤 각료는 『이번 회의가 기존 한일관계에 비추어 본다면 쿠데타쯤 되는 것 같다』고 했다더군요. 그만큼 그들에겐 의외로 비쳤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한일유착이란 체취가 싹 가시고 시종 우리 대표단이 당당한 자세로 세게 나온 것부터가 일측에는 커다란 쇼크였던 것 같습니다.
-첫날 공개로 진행된 전체회의분위기는 딱딱한 긴장감이 피부로 느껴졌는데 이런 분위기는 개별각료회담에서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측이 시종일관 안보경협론을 강경하게 편 것도 회담분위기를 딱딱하게 한 이유입니다만 그들도 한결같이 『고려해 보겠다』는 식의 상투적인 대응으로 나왔습니다.
-양쪽 대표단 중 구면인 사람은 외무·재무장관들끼리의 정도였다죠.
-일본측은 이번에 과거 「유착시대」의 한국대표들을 생각하고 온 것 같은데 한국측은 통상적인 외교교섭의 『춤추는 분위기』를 극력 배제하고 단도직입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 것이죠.
-한국대표들의 접근스타일이 일본대표들에게는 야구의 이레귤러 바운드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상공장관회담에서 서석준장관은 『일본은 너무 인색하다』 『우리의 국민감정이 용납 못한다』 『일본은 뭔가를 보여라』는 등 「외교적」이 아닌 직선적 표현을 썼고 국제무대에 경험이 많은 신병현부총리까지도 커브보다는 직구를 던져댔으니까요.
-양국지도층간에 의식의 갭을 조정할 시간을 미처 갖지 못한 「새 시대」한국외교의 특수성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일본대표들이 노외무 주최 만찬 스케줄이 있는데도 불구, 청와대를 앞당겨 방문하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은 각료회담의 새로운 스타일에 당황한 나머지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였다고 하더군요.
-그런 분위기 때문에 첫날 회의벽두부터 『이번 회담은 무위로 끝날 것 같다』는 예상들이 나왔죠.
-일측은 당초부터 이번 각료회담을 안보경협의 타결 라운드로 생각하기보다는 자국내 여론을 의식해 그들의 입장이나 밝히고 넘어가자는 자세였던 것 같습니다.
-공동성명도 그런 배경 때문에 한일각료회의 사상 처음으로 유산된 것 아닙니까.

<형식적 성명 우린 안 바라>
-과거 한일각료회담에서 채택한 공동성명의 예를 보면 회의성격상 특정사안에 대한 합의같은 것은 드물어요. 따라서 공동성명이 나온다 하더라도 핵심을 반영시키기는 어려운데 우리측은 안보경협을 반영시키지 못할 바에야 형식적인 공동성명을 낼 필요가 없다는 강한 입장이었죠.
-앞으로 한일현안의 타결 전망을 말해봅시다.
-우선 양국이 수뇌회담을 갖기로 합의했으니까 가부간 타결은 전두환대통령-「스즈끼」수상간에 결말이 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원래 일본사람들은 가장 높은 사람이 꽃을 따도록 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에 앞서 서울·동경 또는 유엔 등 제3국에서 몇차례 외상회담이 열리거나 기타 실무접촉이 빈번히 이루어지겠지요.
-내년1월로 예정된 수뇌회담이 늦어질 가능성은 없을까요.
-양논이 있습니다. 늦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우리와 국론결정 과정이 다른 일본의 국내사정을 들지요.
일본의 복잡한 정치·사회·경제구조로 보아 안보경협처럼 이견의 폭이 큰 문제는 이른바 국민의 컨센서스를 구하는데 시간이 필요할거라는 얘기입니다.
반면 예정대로 열릴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 「소노다」외상이 조속히 열겠다고 약속했고 ▲대한경협이 일본의 방위비부담을 촉구하는 서방에 대한 메시지전달의 일환이므로 빨리 매듭을 지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명분과 실리를 어느 선에서 조화시키느냐도 쌍수입니다.
그러나 안보명분과 경협규모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일본이 한국의 명분에 대한 유연성을 기대하는 건 안이한 생각입니다.
-우리의 경제관리들이 경협규모가 획기적으로 늘어날 것을 비교적 낙관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우선 한국의 갚을 능력을 일본이 믿고 있다는 사실이지요. 때문에 일본으로서는 저리로 빌려ㅈ어도 충분히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습니다. 이번 각료회담에 교통부장관을 포함시킨 것은 일본측 요청에 따른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경부선의 고속전철화, 지하철·국제공항건설 등에 내심 주판을 튕기고 있다는 기미가 있어요.
-만약 우리가 60억달러의 경협을 받으면 그후의 한일관계는 어떻게 발전하겠습니까.
-경제·문화교류가 더욱 증대될 것입니다. 우리의 일본을 수용하는 자세도 전보다 더 우호적일 수 있고 일본엔 보다 높은 차원의 부대이익이 따를 것입니다. 우리의 피해의식과 일본의 우월의식이 교정되는 개기가 될 것입니다. 무역적자는 오히려 더 심화될지 모르지만-.

<정리=전육·유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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