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마케팅] 사랑했던 만큼 미움 커지더라 유명 브랜드일수록 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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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2호 20면

미국 컨슈머리포트가 실시한 슈퍼마켓 선호도 조사에서 글로벌 유통 강자 월마트를 제치고 1위에 오른 중견 기업 웨그먼즈의 한 매장 모습. [사진 시라큐스닷컴]

2012년 미국의 디지털 마케팅 컨설팅업체인 소셜미디어 익스플로러(Social Media Explorer)는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사랑받거나 미움받은 브랜드’ 순위를 발표했다. 트위터·페이스북·레딧 등 10개의 소셜미디어에서 이루어진 대화 내용에서 ‘사랑(love)’또는 ‘미움(hate)’이라는 단어와 함께 쓰인 브랜드를 분석한 결과였다. 놀라웠던 점은 10위권에 들어간 브랜드 중 무려 8개가 양쪽 순위에서 중복됐다는 점이다. 특히 트위터, 페이스북, 아이폰은 소비자들에게서 가장 사랑받는 동시에 가장 미움 받는 브랜드로 나타났다. 파워 브랜드란 결국 소비자의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받는, 그야말로 ‘애증(Love-Hate)’의 대상이라는 점이 입증된 것이다.

② 브랜드와 소비자, 그 애증의 관계

글로벌 톱 브랜드를 꿈꾸는 기업이라면 브랜드 명성의 양면성을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명성을 바탕으로 소비자들로부터 신뢰와 지지를 받을 수 있지만, 명성이 높을수록 고객의 기대가 커지기 때문에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더 큰 불만으로 되돌아와 브랜드가 손실을 입을 가능성도 커진다. 예를 들어 잘 알려진 아메리칸 에어라인(American Airlines)과 다소 생소한 기업인 스피릿 에어라인(Spirit Airlines)의 고객들이 유사한 수준의 서비스 실패를 경험했을 때, 두 기업 중 어느 쪽을 더 강력히 비난할까? 마케팅 전문가들의 75%가 “아메리칸 에어라인이 위기에 빠질 확률이 훨씬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

사랑하면 쉽게 눈 멀지만 반전 효과도 커
파워 브랜드는 명성이 높은 만큼 고민도 많게 마련이다. 그들의 고민을 해석하는 이론도 다양하다. 마케팅 연구에서는 고객과 브랜드 사이의 애정 관계를 설명하는 두 개의 라이벌 이론이 있다.

먼저 ‘love is blind,’ 즉 ‘사랑은 눈 멀게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브랜드 충성도에 대한 전형적인 해석과 맥을 같이하는데, 충성고객은 해당 브랜드로부터 더 많은 제품, 더 비싼 제품을 구매할 뿐 아니라 브랜드의 실수에도 관대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2014년형 할리데이비슨 XL 883N 아이언 모델.

예를 들어 할리데이비슨의 열혈 고객은 바이크가 고장 났을 때 제품의 결함보다 도로상황을 탓하거나 자신이 입은 손실을 축소하여 불쾌감과 불만감을 덜 느낄 수 있다. 여기에는 현재 상황(제품 고장)과 기존 태도(브랜드 사랑)와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브랜드 과오를 축소하거나 문제의 부작용을 과소평가하려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 작용한다. 브랜드에 대한 사랑이 제품·기업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완화하는 버퍼링 효과(buffering effect)를 일으킨 것이다.

반대로 ‘love becomes hate’, 즉 ‘사랑이 강한 미움으로 전환’되는 반전 효과도 있다. 특정 기업이나 브랜드에 애정을 지닌 고객은 자신의 기대에 일치하지 않는 기업의 경영활동이나 제품·서비스 문제를 배신의 행동으로 인식해 일반 소비자보다 더 격렬한 분노를 느낀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그동안 내가 이 브랜드가 잘되도록 많은 도움을 줬는데, 정작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는 나를 실망시켰다”는 배신감이 작용한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상황에서, 낭만적인 로맨스는 순식간에 비극적인 복수극으로 바뀐다. 대중적인 인지도와 인기를 누릴수록 비난과 미움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스타 브랜드의 고민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JC페니의 매장을 소개하는 전 CEO 론 존슨.

글로벌 기업들은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깊은 애정 관계였던 충성고객을 순식간에 ‘적군’으로 만드는 반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곤 한다. 100년이 넘도록 미국 유통시장의 역사를 주도해온 ‘JC페니’는 중장년 여성들에겐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어린 시절 단짝과도 같았다. 그런데 2011년 말 새로 취임한 최고경영자(CEO) 론 존슨은 애플 스토어의 성공을 이끌었던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도입했다. 연간 수백 회에 달하는 할인·쿠폰 증정 행사를 없애는 대신 단일가격 전략을 채택하고, 빅 사이즈 의류 취급을 중단했다. 게다가 와이파이 서비스, 주스 바 등 현대적인 매장 분위기를 연출하는 획기적인 변신도 시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도전은 비극의 단초가 되고 말았다.

매출 곤두박질한 JC페니의 교훈
무엇이 문제였을까? 바로 브랜드 역사와 명성의 기반이 되는 중장년 여성고객들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할인 이벤트를 기다리고 쿠폰을 사용하는 일상의 즐거움, 친근한 사람들과 함께 하던 익숙한 공간을 빼앗긴 그들은 백화점의 변신에 모욕감을 느낄 정도였다. 1995년부터 JC페니를 이용해온 한 여성 고객은 “우리는 JC페니의 새로운 모습에 배신감을 느낀다. 오랜 친구를 잃은 데 충격을 받고 화가 난다”는 내용의 편지를 존슨에게 보내기도 했다. JC페니의 2012년 매출은 전년대비 25% 하락한 130억 달러로 1987년 이래 최악의 성과를 보였고, 결국 2013년 4월 존슨은 취임한 지 16개월 만에 CEO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한때 최고의 인기를 누리다 서서히 기억 속에서 사라진 왕년의 스타들은 과거를 회상하며 ‘그때는 내가 스타 병에 걸렸는지 몰랐다’며 후회하곤 한다. 본인은 못 느꼈을지 모르지만 스타의 오만함을 감지한 팬들 사이에 애정은 배신감·증오감으로 전환된다. 기업도 높은 인지도, 시장 점유율 등 외형적 성과에 도취해 규모를 키우는데 급급하거나 익숙한 경영방식에 빠져들면 크고 작은 불평은 물론 충성고객들의 애정 어린 충고를 무시하기 일쑤다. 이는 결국 충성고객을 적군으로 전환하고 브랜드 수익성과 명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위기로 이어진다. 도요타의 아키오 사장이 2009년 대규모 리콜 사태를 회고하며 “만들면 팔린다는 오만함으로 고객 불만에 소홀했다”라고 고백한 것도 바로 이런 점에 대한 뒤늦은 깨달음이 아니었을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 브랜드일수록 다양한 채널을 통해 시장의 불만과 비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대중을 상대로 하는 기업이라면 부정적 평가에 더 예민하게 반응해야 한다.

글로벌 유통산업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월마트의 경우, 최근 미국 컨슈머리포트가 실시한 슈퍼마켓 선호도 조사에서 꼴찌 다음으로 나쁜 결과를 얻었다. 오히려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슈퍼마켓으로 꼽은 업체는 웨그먼즈(Wegmans), 트레이더 조(Trader Joe’s) 같은 중견 기업들이었다.

브랜드도 ‘스타 병’ 걸리면 회복 어려워
개성 있는 중소 브랜드가 선호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세계 1위 기업이 최악으로 선정된 것은 의외의 결과였다. 소비자들은 인터뷰를 통해 “싼 가격 때문에 월마트에서 장을 보긴 하지만 우중충한 분위기는 정말 싫다”거나 “트레이더 조를 더 좋아하는데 우리 동네에는 없어서 할 수 없이 월마트를 간다”는 속마음을 드러냈다. 낮은 가격, 편리한 접근성 때문에 월마트 매장을 선택하지만, 경제적으로 조금만 더 여유가 생기거나 동네에 다른 슈퍼마켓이 문을 열면 뒤도 안 돌아 보고 떠날 소비자들이 다수 존재하는 것이다. 실제로 낮은 가격과 편리성을 동시에 갖춘 아마존이 식료품 사업을 시작하면서 월마트를 위협하는 존재로 부상하고 있기도 하다. 굴지의 1등 브랜드라도 고객의 복잡한 심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대응하지 못한다면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지난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독일에 7대1이라는 성적으로 대패한 것은 들뜬 축제 분위기 속에서 공격 위주의 플레이를 펼치다 제대로 수비를 못한 결과라고 한다. 동네 축구에서는 무조건 골만 잘 넣으면 되지만 강자들이 다투는 월드 챔피언십에서는 공격과 수비의 밸런스가 승리를 이끈다.

글로벌 소비시장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비즈니스의 최강자 아마존, 요구르트 시장에서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며 1위 자리를 넘보고 있는 초바니(Chobani)의 공통점은 충성고객 관리에 공을 들이는 것과 같은 크기의 노력으로 불만과 반감을 지닌 적군들을 관리한다는 점이다. 충성 고객과 반감고객을 조화롭게 관리해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다.

글로벌 톱 브랜드의 위상을 갖춰가고 있는 한국기업들도 칭찬에 목말라하는 성장형 마케팅에서 벗어나 시장의 비난을 소중히 여기는 성숙한 전략을 펼쳐야 한다. JC페니와 도요타, 월마트가 겪었던 크고 작은 굴욕적인 사건들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성장의 시기를 함께 보낸 충성고객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닌지, 성공을 자축하며 고객들의 불평을 어쩔 수 없는 잔소리로 치부하는 것은 아닌지, 국산 브랜드에 대한 의리로 마지못해 구매하는 복잡한 심정의 소비자들은 없는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사랑과 칭찬을 자양분으로, 미움과 비난을 성장 촉진제로 삼는 지혜를 지녀야만 진정한 글로벌 파워 브랜드가 될 수 있다.



최순화 소비자학을 공부했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석사 학위를, 퍼듀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근무했다. 현재 국내외 소비시장 트렌드 분석, 브랜드 관리 전략 등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반감고객들』(2014), 『I Love 브랜드』(공저, 201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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