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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평의원들의 나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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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한당의 K의원은 한때 신상우사무총장에게 『정치를 더할 생각이 없어 지구당을 내놓을테니 후임 조직책을 임명해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다.
그 요구가 즉각 만류되긴 했지만 K의원은 『선거판에서 못 볼 것도 봤고…뭔가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 정치에 뛰어들었지만 실제로 해보니 그렇지도 않더라』고 심경을 털어놓았다.
K의원의 말은 시사하는바 크다.
당직을 갖거나 겸직의원들은 태도 뭔가의 일에 정력을 쏟고 있지만 평의원중에는 『겨우 이것하자고 그 고생을 했나』하는 역할과 보람에 대한 회의를 갖고있는 사람도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회의는 그런 대로 바쁘고 뛰어다녀야만 하는 국회개회 기간중엔 덜하지만 장기폐회의 하한기엔 더하다.
대체로 폐회 중 평의원들의 일상이란 △지역구 관리 △국회준비 △사생활 등으로 3대별 해볼 수 있다.
이중 지역구관리는 1주일 또는 10일정도 지역구를 누비며 당원단합대회·숙영대회 등을 가지거나 관내 각종 행사에 얼굴을 내미는 활동. 또 지역구에 수재나 큰 행사가 있어도 수시로 내려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긴긴 폐회기에 비하면 지역구 관리를 위한 귀향활동은 상대적으로 기간이 짧고 길게하고 싶어도 엄청난 출비 때문에 그렇게 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의원들의 일상은 서울생활일 수밖에 없고 서울 중에서도 의원회관의 자기사무실에서 대개 시간을 보내는 생활이 된다.
찾아오는 손님맞이하기, 지역구민의 민원처리 등을 하면서 평의원들이 개회 중 가장 역점을 두고 벌이는 작업은 국회준비일 수밖에 없다.
정기 국회에서 평의원이 노리는 목표는 대개 두가지. 하나는 예결위원을 따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본회의 대정부 질문자로 선정되는 것.
두 가지를 다 못하더라도 소속상위에서 벌일 발언준비는 누구나 다 해야한다. 그래서 예산공부를 하고 발언준비를 하는가 폐회 중 평의원들의 공통된 일과다.
신문스크랩을 뒤지고, 도서관을 찾으며 관계부처에 자료를 의뢰하기도 하며, 부지런한 의원은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대학교수 등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민정당의 K의원 같은 이는 본회의 대정부 질문자 선정에 관심을 보이면서 『차례가 오면 다행이고 안되더라도 상위에서 활용하기 위해 자료수집을 하고있다』고 밝혔다. 민한당의 상당수 의원들이 오래 전부터 총재·총무 등 당직자에게 예결위원 희망을 비치는 것도 널리 알려진 일이다.
각당에서도 의원들의 국회준비활동은 적극 독려하지만 온종일 일에 매달리기도 힘들거니와 그렇게 열성적인 의원도 많지 않다.
『좀 해야 할텐데…』하면서도 별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상당수 의원들이 폐회 중에는 바둑·목욕·잡담이나 가벼운 독서 등으로 「소일」하고 있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실정.
A의원의 폐회 중 하루를 보자.
『느지막하게 아침8시 눈을 뜬다. 식사 등을 끝내고 10시반쯤에야 의원회관으로 나간다. 편지2통을 본 뒤 지역구민 3명을 만났다. 30분이면 해치우던 점심도 1시간3O분 정도로 늘어났다. 회관으로 돌아와 평소 친한 B, C의원과 바둑을 둔다.
저녁6시, 함께 나와 사우나를 하고는 저녁을 겸해 한잔한다. 10시 귀가.
A의원의 일과가 항상 그러하다는 것은 아니다. 무익하게 보낸 하루의 예를 들었을 뿐이다.
A의원 역시 지역구민의 민원을 처리해야 하고, 국회도서관을 찾아 자료조사나 대정부질의 준비를 하며 당간부를 만나 상임위대책을 논의하고 결혼식 주례도 서야한다.
「표」와 직결되는 주위와 경조사참석은 의원들의 일상에 매우 중요한 열중의 하나다.
오홍석·김재영의원 (민한) 은 토·일요일이면 7∼8건을 맡는데 3O대의 서청원의원(민한)도 심심찮게 주례를 선다는 얘기다.
그러나 주례나 경조사도 지역구출신의원들에게는 많지만 전국구 출신에게는 해당이 적다.
의원회관에서 삼삼오오 잡담을 나누거나 아침부터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많은 경우가 전국구 의원들이다. 당이 부여하거나 스스로 정한 정책 과제연구가 평소의 일이지만 기나긴 여름해는 국회의원의 「보람」을 새삼 생각케 할만큼 지루하다.
이런 의원들의 대부분은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당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둡게 마련이어서 가까운 의원끼리 가지는 「정보교환」이 가장 흥미있는 (?) 일상이다. 의원회관에서는 이런 정보교환을 위한 「교환방문」이 잦다.
그런 점에서 의원회관은 의원들의 사무실이자 정보시장이며 소일을 위한 오락장의 구실까지 하는 셈이다.
민한당의 유옥고부총재 사무실은 기원이라고 불릴 정도로 바둑애호 의원들의 발걸음이 잦다.
그런가 하면 심명보·손세일의원처럼 집의 서가를 옮기다시피 해놓고 독서에 탐닉하는 도서관이 되는가하면 훌륭한 정치토론장이 되기도 한다. 불과 8명뿐이지만 여성의원들의 활동영역은 일반 평의원보다 넓을지 모른다.
8명중 김정례의원만이 지역구출신(성북)이며 야당으로는 황산성의원뿐인데 ▲여성단체=김현자 (YWCA) · 김모임 (간호협회) · 김윤자 (소비자보호협) ▲학계=이경숙(숙대)·김행자(이대)의원 등으로 출신분야와 긴밀한 유대를 갖고있다.
이들은 「친정」으로부터 풍부한 자료를 얻을 수 있고 옛날의 전공을 깊이할 수 있어 이들의 주된 관심분야인 여성권익보호에 기여하기가 쉽다. 다만 이들은 남성으로부터 「소외」당한다는게 불평인데 여성의원 동우회 회장을 맡고있는 김현자의원은 공식적인 자리이외는 끼기가 어려워 「심응뉴스」에 어둡다고 불만이다.
또 적극적이면 설친다는, 소극적이면 무능하다고 할까봐 행동거지도 몹시 조심스럽다는 것.
평소 이들은 뚤똘뭉쳐 여성지위향상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정내혁국회의장 초청강연 ▲각당대표 초청 연설 등을 추진 중.
또 민정당 여성의원들은 대통령 직속의 「여성지위향상위원회」설치 방안을 공동으로 손질하고있다.
황의원 등은 여성에 불리한 가족관계법·이혼위자료·직장차별 등을 연구중이다.
대부분 여성의원들이 3∼5개의 명예직을 갖고 신문·TV 등에도 자주 나가는 편.
김모임·김행자·황산성의원 등은 대학강의도 맡고있다. <김현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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