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이와 생계사이 <4>|고급 공무원의 겉과 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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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해 숙정 때 고급공무원에 대한 일괄사표를 받으면서 대상을 서기관 이상으로 했었다. 어느 직급부터가 고급공무원이냐에 대한 정설은 없지만 대체로 3급(부 이사관)부터를「고급」으로 예우해 주는 것 같다.
부 이사관이 되면 서기관에 비해 여러 면에서 파격적인 대우를 받는다.
중앙청의 K과장은 부 이사관 진급과 함께 국장이 되어 첫 출근하는 날 자신의 신분에 대한 뿌듯한 만족감을 느꼈다.

<어제와는 격세지감>
아침식사를 끝내자 대문 밖에서 클랙슨이 울리고 아내와 아이들의 전송을 받으며 검은 마큰○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통근버스를 타려고 아침을 거르던 어제와는 격세지감의 차이었다.
중앙청 정문에서 수위가 거수경례를 붙이고 문까지 정중하게 열어준다. 사무실 문을 들어서자 여비서가 공손히 인사를 하며 차와 신문을 푹신한 소파 탁자 위에 갖다놓는다. 어제까지 점심 한 그릇 먹자고 운동장만 한 홀에서 줄을 지어 셀프서비스 차례를 기다렸지만 이제는 3급 이상 전용식당에 점잖게 앉아만 있으면 모든 걸 척척 갖다준다.
봉급날은 월급이 오른 것은 물론 정보비로 20만원을 더 얹어준다. 정부가 작성한 직급별 연간경비를 보더라도 3급 이상부터 경비가 껑충 뛴다. 인건비를 포함해 4급 1명에 드는 돈은 연간 8백41만9천 원이지만 3급에게는 2천2백69만9천 원이 든다. 한 계급사이에 무려 1천4백28만원의 차이가 난다.
장관이 되면 한달 봉급은 66만7천 원이지만 기타 장관의 예우를 위해 드는 돈이 봉급의7·7배인 7천3백여 만원에 이른다.
현재 입법·행정·사법부를 통틀어 장·차관을 포함해 3급 이상 공무원은 1천4백69명. 따라서 전체공무원 59만6천4백여 명 가운데 이런 대우를 받으려면 4백대1이 넘는 경쟁을 뚫어야 한다.
특히「고급」의 문턱으로 들어가는 때가 다른 직급의 경쟁률 보다 가장 높다. 5급에서 4급으로의 경쟁률이 3·6대1, 3급에서 2급이 1·1대1, 2급에서 1급이 4·3대1인데 비해 4급에서 3급으로의 경쟁은 7·8대1이다. 즉 8명의 과장 중에 1명만이 국장이 된다는 얘기다.
물론 국장이 되기 위해서는 15년 내지· 2O년 동안 동료·선배·후배 틈에서 피나는 실력경쟁을 벌여야한다. 그뿐이 아니다. 보신을 위한 줄잡기·눈치보기에서도 다른 사람을 이겨야한다. 승진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해야한다는 절박한 각오가 없으면 안 된다. 어떤 공무원은 김장철·명절·장관생일날 등은 부인을 아예 장관 집 가정부로 파견해 잡일까지 거들어 추었다는 얘기도 있다.
장·차관이 뒤면 예우는 한층 격조가 높아진다. 장관은 2천5백만 원이 넘는 최고급 푸조 승용차를 타며 승용차 안에는 무선전화도 설치되어 있다. 또 휴일사용에 대비해 위장넘버까지 가질 수 있다. 장·차관은 자신의 승용차 외에 비서실용 승용차가 따로 배정 돼 대부분 이 승용차는 사모님들이 이용할 수도 있다.
또 금년부터 장관의 경우 해외여행을 할 때 부인을 동반할 수 있게됐다.
고급공무원들은 손에 쥐는 봉급 이외에 무형의 소득도 많다. 즉 일상생활을 하면서 걸리적거리지 않고 편리하게 살수 있다는 혜택도 소득으로 볼 수 있다.
중앙청의 한 관리는 동사무소에 가서 주민등록증 한 장을 떼더라도 편리하고 교통순경에게 적발이 되더라도 양해를 구할 수 있는 이른바 「융통성」 있는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게 봉급이상의 가치가 아니겠느냐 고도 한다. 즉 대접을 받고 사는 기쁨이 있다는 것이다.
중앙청 국장급 이상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골프를 치는데 거기에도 혜택이 있는 게 보통. 대개 1천만원 정도 되는 멤버십을 사지 않아도 공무원에게는 회원대접을 해줘 싼값에 골프장을 드나들 수 있는 등의 보이지 않는 혜택이 있다.
공무원 봉급이 적다적다 하지만 일단 국장이 되면 누구나가 모두 『이 자리를 오래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들을 한다는 것이다.
80년도 행정고시 응시자가 1만1천3백52명으로. 이중 합격자는 1백87명이었다. 60대1의 경쟁률이었다. 월급은 적지만 공무원으로 몰리는데는 이러한 혜택도 한 이유가 된다.

<퇴직후 문제로 고민>
총무처에서 연금관리공단이 분리되면서 직원 중에 지원자를 모집했으나 사무관·주사 급에서는 서로 가려는 경쟁까지 붙었으나 과장 이상에서는 한 명의 지원자도 없었다. 과장 이상이 되면 그런 대로 공무원생활이 더 낫다는 판단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고급공무원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퇴직후의 문제다. 더구나 요즘같이 50세가 넘으면 늙었다는 느낌이 들어서는 40대 후반만 되어도 퇴직 후 무엇을 할 것인가가 항상 머리를 짓누르는 고민거리다.
이런 걱정은 유관단체나 사기업체와 관련이 깊은 경제부처나 상위직 자리가 많은 내무부 공무원 보다 문공부·총무처 등 비서업무처 일수록 심하다. 따라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장관눈치를 더 봐야 하고 그런 과정에서 점점 공무원생활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된다는 사람도 있다.
현직에 있을 때 기세등등 했던 사람일수록 퇴직 후에 정비례하여 초라해지는 예를 종종 볼 수 있다.
마치 자신이 잘나서 부하직원들이 절절매는 줄로 착각하던 사람에게서 그 자리가 없어지면 남는 것은 초라한 인간뿐이라는 것을 절감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종종 보게된다. <문창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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