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토끼 쫓는 미 인플레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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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자고로 몹쓸 병에는 명의가 많이 나는 법이다. 세계경제의 고질인 인플레에 대한 논쟁은날이 갈수록 가지를 더해간다. 저마다들 원인분석과 처방들을 내리고 있지만 어느 것하나 속 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 못하고 있다. 장님들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고 있는 격이라곤나 할까. 다음은 근착 워싱턴포스트지에 실린 미국 인플레를 둘러싼 갖가지 분분한 이견을 간추려 옮긴 것이다.

<편집자주>
미국경제가 요즈음처럼 인플레를 잡겠다고 만만히 별렀던 때도 일찌기 없었다.
갖가지 부작용과 비난을 무릅쓰고 20%가 넘는 살인적인 고금리정책을 잡아 나가는 것도 기어이 인플레를 잡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일단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의지는 비록 같을지언정 인플레를 파악하는 시각에서는 정책당국자들마저도 상당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대통령 「레이건」은 『인플레의 주범은 정부의 과도한 적자재정』이라고 선언한데 대해 재무장관 「리건」은 『통화량을 자극하지 않는 재정 적자라면 인플레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맞서고 있다. 인플레를 잡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디플레정책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있는가하면 디플레정책으로 당장은 인플레가 진정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인플레를 더 부채질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노조의 임금인상 압력이 물가를 올린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프리드먼」교수 같은 사람은 오히려 그 반대를 증명하는 통계자료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사실 모든 견해들이 부분적으로는 옳은 것이다. 세계대전 이후 가장 설득력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케인지언」의 초과수요이론은 과도한 정부지출이나 민간소비가 늘어나는 것이 인플레의 원인이라 보았고 따라서 이를 조절하는 것이 인플레방지책이라고 설명해 왔다.
한편 통화론자들은 돈이 많이 공급되는 것이 인플레의 첫 출발이라고 보고 긴축정책만이 인플레퇴치의 왕도라고 믿고있다.
심지어 돈줄만 단단히 쥐고 있었더라면 석유파동에 따른 인플레도 없었을 것이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돈의 움직임과 물가의 움직임 사이에는 상당한 시차가 있게 마련인데다 임금의 결정 과정이나 금융제도 등이 나라마다 다른데 무슨 소리냐고 일축해 버린다.
돈이 많이 찍혀 나와 물가를 올리는 원인이 된다고 하지만 거꾸로 물건값이 비싸져서 똑같은 물건을 사려해도 더 많은 돈이 필요해지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통화의 증발은 인플레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어쨌든 최근 미국이 추진해 나가고 있는 반인플레정책은 통화론자들의 득세로 강력한 긴축기조위에 짜여지고 있다.
대통령경제고문 「와이덴붐」같은 이는 지속적인 긴축으로 팔리지 않아서 값을 내릴 수 밖에 없게 하자는 불황필수론을 내세우기까지 한다. 예컨대 불황으로 실업이 늘어나면 그만큼 인플레는 진정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따져 볼때 치르는 희생은 엄청난데 그에 따른 대가는 너무 미진하다는 것이 문제다.
긴축의 고통이 너무 심한 나머지 꼭 이렇게 해야 인플레가 잡히는 것인가. 도대체 이럴만한 가치가 있는 정책인가 하는 따위의 근본적인 후회론까지 제기되고 있는 판이다.
인플레는 인플레대로, 실업은 실업대로 늘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결국 인플레를 잡겠다고 불황정책을 쓰다가 이젠 2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야하는 딜레머에 빠진 것이다.
「레이건」정부가 내보이는 야심도 이 두가지를 다 해치우겠다는 것이다. 감세정책을 통해 불황도 타개하면서 긴축을 통해 인플레를 잡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마리의 토끼도 제대로 잡기 힘들텐데』하는 것이 전문가들의 우려다.
사실 전문가라는 그들 역시 막 부러지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서도 말이다. <이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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