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말단 공무원 주머니 사정|서기9호봉 월 17만원…용돈은 줄여도 5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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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주는 유혹」을 거절하기 힘들어 지출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만큼 소득을 가진 사람이 우리 주변에 더러 있기도 하지만 지출에 수입을 짜 맞출 수만 있어도 요즈음은 행복한 부류에 든다. 봉급 하나만을 생각한다면 더군다나 공무원사회에서는 수입과 지출이라는 두 쌍곡선을 일치시키기가 더욱 어렵다. 따라서 언제부터인가 그런 공무원 앞에는 「직백」또는 「모범」 이라는 점 두개를 우리사회는 붙였다.

<월급 묻는 건 결례>
서울 M동사무소의 김OO서기. 3년의 군대경력을 쳐서 지금의 봉급은 8급 9호봉에 해당한다. 본봉4만4천원에 직책과 근속 급을 합쳐 12만9천원. 여기에 조정·가족수당 그리고 민원업무를 맡음으로써 주어지는 참가수당까지 포함하면 모두 10만4천원, 소득세와 연금에 해당하는 기여금 등을 제하고 금씨는 한말에 17만원 정도를 손에 넣는다. 밥상에는 고기류가 오르는 일이 좀체로 드물다. 부인과 아들 둘, 이렇게 빠듯이 살아도 생계비만 한 달에 7만원을 웃돈다. 친척과 동료들의 경조비를 포함해 용돈을 줄여 써도 5만윈선.
장래를 위해 약간의 저축을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럴 때면 공교롭게도 아이들이 아프거나 명절을 만나 목돈이 나가고 만다. 금씨의 궁색은 여기서 그치질 않는다.
일년이 멀다 하고 오르는 2백 만원 짜리 전세방 값을 보충하려면 l백 만원 정도는 빚을 져야하고 이 돈을 나눠 갚자면 연500%의 보너스·정근수당도 눈 녹듯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말단공무원의 세계에선 「월급이 얼마인가」를 묻지 말라는 불문율이 있다. 참고로 살펴보면 현재 9급(서기보)1호봉인 공무원의 초임은 9만원.
말단의 정상인 주사(6급)로 30년을 근속하더라도 봉급은 25만5천5백원이다. 물론 몇 가지 수당이 여기에 덧붙여지지만 웬만한 기업체의 4,5년 경력 대리라도 보통 월급이 30만원은 넘는데 비하면 어처구니없는 액수다.
「벌이」 와 「생계」 가 현실에서 갖는 거리감이 크면 클수록 사람들은 어차피 또 다른 기대소득을 찾아 나서야 살 수 있다.
부부맞벌이나 재산소득과 부업 등의 방법들을 강구한다.
하급공무원이 많은 지방관서 일수록 그 비율은 높다.
또 지방부서 주사보 서모 씨의 경우는 부인이 생활전선에 나선 케이스. 20만원을 밑도는 봉급으로 견디다 못해 부인이 미용기술을 배워 집안에서 인근 주부들의 머리를 가꿔 준다. 부정기적이긴 하지만 한달 수입이 3만원정도는 된다. 이 정도만 해도 집 마련에 진 빚을 갚고 애들 학용 품값 대기엔 큰 도움을 준다. 그렇다고 서씨 내외에게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떳떳이 간판 걸고 미장원을 열 형편이 못되다 보니 이웃 미장원에서 무허가 영업으로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때마다 공무원인 자신의 신분을 감추느라 초조하고 바쁘다. 서씨와 같은 주사보라해서 물론 처지가 다 같은 것만은 아니다. 상급기관의 이모(50) 주사는 고급주택가로 알려진 서울 강변에 이미 억대가 넘는 주택도 갖고 있다. 일찍부터 부인이 계주로 모은 돈을 부동산투기에 굴려 한 몫을 잡았다.
자녀교육비등 한달 생활비가 1백 만원을 웃돌아도 걱정은 없고 이씨의 월급 30만원은 모두 용돈으로 써버려도 전혀 영향이 없다.
소득과 지출의 괴리를 한꺼번에 뛰어넘는 방법으로 일부 공무원사회에는 「부조리의 벌이」 가 있다. 자의 건 타의 건간에 이런 형편에서 일부공무원들은 「주는 유혹」을 거절하지 못한다.
지금은「일만 많고 재미가 적다」해서 인기를 잃은 곳으로 일선 세무서의 개인 세과가 있다. 매년5월이 되면 개인세과 직원들은 담당업소를 들러 기장여부를 확인하고 장사가 잘되나 안되나 업? 을 살핀다. 서울시내 세무서의 경우 직원 한사람의 담당건수는 무려 6∼7백 건. 장사하는 사람 치고 「담당을 외면할 수 없어 저녁에 사무실로 돌아올 때는 양복주머니들이 불룩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5∼6년 전 이야기지만 지금은 세무 공무원직을 그만둔 박모씨의 회상으로는 l년이면 이렇게 모은 돈으로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지위가 말단이라고 해서 벌이도 말단이라는 말은 이미 웃기는 얘기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은 규모지만 하다못해 말단 부서의 대명사로 알려진 동사무소에서도 일부에서는 즉각 증명서를 데려오면 아는 사람의 경우 잔돈은 안 거슬러 가는 상식」도 얼마 전까지는 유효했다. 또 여기에 조금만 재주를 덧붙이면 동급의 서기라도 월급의 갑절은 되는 월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봉급으로 생활돼야 흔히 하는 말로서『밖으로만 세지 않으면 어떤 비위도 내부적으로는 해결된다』 는 이야기가 관가에는 있다. 은폐된 부조리의 뿌리가 깊다는 의미도 되겠지만 동시에 한번 그릇된 관행은 바로잡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도 시사하는 말이다. 최근에 드러났던 서울 중구청 위생과 사건이 그 한 예다. 다방허가 하나에 10∼30만원 커미션을 내규로 정하다 기피한 것.
사건이 터지자 담당직원이 모두 사라진 현장은 바로 이것이 변명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공무원들은 과거나 지금이나 『정말월급만으로는 살수 없느냐?』 는 질문에 가장 곤혹을 느낀다고 한다. 그렇게 살아본 경험도, 생각도 가져보지 못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말단 공무원들에게는「그런 궁색한 삶」의 시련을「누가 믿어 주겠느냐」 하는 점이 말문을 막았다고 보아야 보다 옳을 것이다.「깨끗한 정부」로 가는 길은 공무원에게는 「벌이」을 봉급하나로 수령하는 길을 의미한다. 그리고 또 공무원의 입장에선 이 「당위」를 부정해야할 명분이 없다. 문제는 이 「명분」의 길이 시련의 길이 되지 않게 하는 일이다.
말단공무원의 봉급과 생계비용과의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다. 이 간격에서 생기는 가장으로서의 낙오를 뛰어넘기 위해 다른 「벌이」를 찾는 가운데, 본분을 외면해야만 될 경우도 더러는 불가피했다.<장성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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