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태풍「애그니스」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폭풍전야의 고요」라는 말이 있다.
말에 숨은 뜻은 「다가올 큰 일에 대한 어떤 두려움이나 이상스런 정적」등을 나타낸다.
그「폭풍 전야의 고요」가 주는 긴장과 긴 박을 가장 질감 있게 느끼는 곳 중의 하나가 재해대책본부다.
건설부가 맡고있는 중앙재해대책본부는 집중호우가 시작된 29일부터 비상이 걸리고 본부장인 김주남 장관을 비롯한 많은 직원들이 철야 근무에 들어갔다.
집중호우는 사흘간 계속됐다. 줄기찬 빗줄기에 모두 익어 가는 벼를 생각하며 안스러워 했다.
다행히 농작물에 대한 피해는 온 비에 비하면 적은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정작 태산 같은 걱정은 태풍 애그니스가 우리 나라를 덮칠 것이라는 관상대 예보가 있고 부터.
종합청사에 있는 재해대책본부 상황판에는 태풍의 진로가 시간마다 체크되고 그 진로는 점점 한반도에 접근해왔다.
재해 대책본부에 나갔던 기자도 상황판을 지켜보면서 예상될 수 있는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야했다.
전국 취재 망이 없는 본사 편집국은 예상되는 태풍의 상륙 지점에 특별 취재반을 급파했다.
또 모처럼 만의 대풍의 현장, 중부곡창지방을 할퀼 때에 미치는 경제적인 영향 등을 어림잡아 보기도 했다.
1일 저녁만 해도, 2일 상오 9시쯤에는 남해안에 상륙할 것처럼 기세를 부리던 애그니스는 2일 새벽 3시 현재의 기상으로는 상오 9시쯤 제주도 남쪽해상을 지나 하오 3시쯤에는 일본대마도 부근으로 빠질 것이라는 관상대의 예보가 대책본부에 들어왔다.
애그니스가 일본 대마도 쪽으로 빠진다면 한반도는 태풍의 왼쪽에 위치하게된다.
일단 최악의 고비는 넘긴 것이다. 그러나 태풍권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월터·크론카이트」에 이어 미국 CBS TV의 뉴스 앵커맨(사회자)의 바통을 받은「댄·래더」는 그의 저서 『카메라는 속일 수 없다』에서 『내 아내를 제외하면 내 생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여성은 칼라라고 불리는 태풍이었다』고 회고했다.
61년 미국의 갤비스턴 남부를 강타한 태풍칼라를 특종 보도한「댄·래더」는「행운을 안겨준 칼라 양」으로 해서 무명의 지방 TV에서 일약 미국 최대 TV의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를 잡은 것이다.
신속 정확한 칼라양 보도는 많은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결정적 공헌을 한 것은 물론이다.
태풍의 중심 권이 한반도를 벗어난 것은 무엇보다도 반가운 일이다.『쌀독에서 인심 난다』는 옛말처럼 올해는 태풍이 들어 훈훈한 인정미를 듬뿍 느꼈으면 좋겠다.

<박병석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