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발사와 북괴의 오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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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미국정찰기 SR-71이 북괴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이 처음 보도된 것은 워싱턴 시간으로 26일 하오 7시30분쯤이었다. 매일 하오 5시30분부터 2시간이나 계속되는 미국TV저녁뉴스가 막 끝날 무렵이었다.
CBS-TV의 경우는 예정된 뉴스를 모두 끝내고 나서 맨 마지막 순간에 「방금 들어온 소식」이라면서 『북한이 미군 정찰기에 대해 미사일 공격을 가해왔으나 빗나갔다』고 황급히 보도했다.
곧 이어 라디오 방송들도 이 소식을 매시간 전했고 밤11시 TV뉴스시간 부터는 톱뉴스가 되었다.
이튿날 아침이 되자 각 매스컴들은 사건 상보를 앞다투어 보도했고 국방성과 국무성의 분위기는 완전히 한국사태로 술렁거렸다.
27일 상오11시30분(현지시간)부터 40분간 계속된 국방성 브리핑 중 처음 30분간은 완전히 이 사건의 질의 응답으로 시종했다.
이보다 30분뒤에 있은 국무성의 정오브리핑 분위기도 국무성과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한국사태로 열기를 뿜었다.
「레이건」대통령이 캘리포니아 목장에서 휴가 중이기 때문에 사실상 「서부백악관」역할을 하고 있는 샌타바바라 마을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스피크스」백악관 대변인, 「미즈」백악관 수석고문, 「와인버거」국방장관 등이 교대로 기자들 앞에 나타나 이번 사태에 관한 설명을 하느라고 부산했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몇가지 인상적인 사실들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고위관리들은 임기응변식의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미국의 정보임무와 관련된 델리키트한 이슈에 대해서는 자유분방해 보이던 미국언론들도 국가이익의 차원에서 추측해설을 피하는 등 상당한 자제력을 발휘하고 있었다는 점등이다.
이제 가장 큰 관심은 왜 북괴가 이런 시기에 이런 도발을 해왔을까 하는 점에 쏠려있다.
『미사일이라는 것은 우발적으로 또는 실수로 발사되는 무기가 아니다』라는 「와인버거」국방장관의 발언이나 국무성의 강경한 성명 등은 이번 사태로 「레이건」행정부가 받은 충격과 불쾌감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일단은 북괴가 「레이건」행정부의 대북방위 결의를 테스트하기 위해 이런 모험을 했다는 평가가 유력하다. 그렇다면 북괴는 그야말로 큰 오판을 한 셈이다. 왜냐하면 「레이건」행정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북괴가 여전히 예측불허의 호전적인 집단임을 다시 확인하는 소득을 얻었기 때문이다. <김건진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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