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벗어나 내면을 추구|20년대를 배경으로 한 첫 장편집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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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유익서씨는 지난 7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데뷔한 후 현실의 질서 속에서 자리를 굳히고 살지 못하는 소외된 인간의 모습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아웃사이더에 대한 이 작가 특유의 애정표시인 셈이다.
『어둡고 아프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사회에 대하여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의 외로움을 대변하고 싶습니다.』
유씨는 단편 『즉흥시인들』에서는 어처구니없이 실직을 당하고 사기꾼·절도범에 속는 무직자를, 『비를 타고 오는 망둥이』에서는 불구자의 남편이 되었다가 부인이 병을 고치자 쫓겨나는 남자를, 『종이비행기』에서는 전성기가 지나 써주지 않는 패션모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그들은 인간의 교활함과 악, 그리고 타락한 사회에 부대끼면서 개인적인 희생을 치릅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들과 맞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려하지만 적극적이지 못하고 결국 파괴되는 존재가 되지요.』
유씨는 그들의 파괴가 외로움 때문에 온다고 말한다. 그들이 외로워지는 것은 자신들을 박해하는 악과 비리를 이해하려하고 자신들 속에도 그같은 악과 비리가 잠재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럴 때 세계는 그들에게 발붙일 곳을 제공하지 않는다.
유씨의 소설에서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세계가 그려지고 있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다.
『일상성의 탈피는 제가 계속 추구할 과제입니다. 장점도 될 수 있고 단점도 될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읽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소설보다는 뭔가 내면적인 멋을 쓰고싶어요.』
현실의 표피만을 긁어내 섣부른 자기주장을 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세계를 형상화해보겠다는 소설미학이말까.
어떤 평론가는 유씨의 이같은 소설을 미지의 세계를 향한 모험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단편만 발표해온 유씨는 l년간의 자료수집과 집필 끝에 이달말쯤 원고지 1천4백장 정도의 장편을 내놓을 예정이다. 1920년대 우리의 전통문화가 파괴되어 가는 것을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그가 자신의 말대로 「이제 시작하는 작가」라면 이 작품은 그의 작가적 역량의 일면을 보여줄 것이다.
고생을 많이 하여 자기 이야기를 쓰면 많이 쓸 수 있으나 소중한 광맥으로 아껴두고 있다고. <임재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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