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세상] 실현 가능성도 희박한 신문 공동배달제 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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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이 지난 15일 국회 문광위에서 문화산업진흥기금으로 신문공동배달제를 지원하겠다고 발언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신문공동배달제(이하 공배제)란 한 지국에서 여러 신문을 함께 배달하는 것으로, 문화관광부는 그 중 현재 5개 신문사가 연합해 과천에서 시범 실시 중인 제도를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신문사 간의 과당경쟁을 줄이고 유통비용을 절감한다는 취지이긴 하지만 사기업인 특정 신문사들을 공공기금으로 지원하겠다는 계획이어서 공배제에 불참한 신문사들을 중심으로 시장경제 체제의 공정경쟁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왔다.

언론학자들 사이에서 "공동배달제에 대한 정부 지원은 신문의 공정경쟁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는 비판과 "유통개선 취지에 부합한다"는 지지가 엇갈린다.

특히 李장관의 이날 '특정 신문의 신문시장 독과점에 대한 정책 준비'발언과 맞물려 정부가 신문시장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려는 의도로도 해석돼 찬반 논란이 뜨겁다.

그러나 공배제 지원계획을 뜯어 보면 실제 지원까지 변수가 많아 정치적 립 서비스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화산업진흥기금의 지원은 문화부의 의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기금관리자인 은행이 돈줄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산업진흥기금은 1999년에 제정된 문화산업진흥기본법에 따라 신문을 비롯해 출판.영화.만화.애니메이션.음반산업 등을 지원하기 위해 약 4천억원 규모로 조성된 것이다. 유통구조와 시설 현대화 부문에서 지원을 신청하면 심사를 거쳐 2년 거치 3년 상환에 연리 4.5% 이상의 조건으로 대출한다.

일차 적격심사는 문화부나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맡지만 이 기금을 관리하는 하나은행.우리은행의 관계자는 "기금의 손실을 막아야 하므로 대출 여부는 최종적으로 은행이 결정한다"고 밝혔다. 기금 지원이 정치적 판단만으론 이뤄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제 문화부의 대출 적격판정에도 불구하고 채권회수 가능성 등을 감안한 은행이 이를 거부해 마찰을 빚은 사례가 여럿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문화부 한 실무자는 "아직 공배제에 대한 정부지원의 타당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아 구체적 계획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라 밝혔고 또 다른 관계자는 "문화산업기금은 자격을 갖추면 누구나 지원받을 수 있다"며 이를 정치적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기도 했다.

더욱이 각 신문사의 지국을 살펴보면 지역사정에 따라 이미 적게는 2개 신문, 많게는 8개 신문까지 공동 배달하는 곳이 적지 않다. 이미 공배제가 자율적으로 도입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특정 중앙일간지들의 공동배달제만 지원한다면 특혜 시비를 일으킬 것이 뻔하다. 또 자금지원의 형평성 문제로 중.소 신문 간에 과잉경쟁을 부추기게 될 것이다.

결국 李장관의 공배제 지원 발언은 자격이 되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는 기금을, 실현 가능성도 따지지 않은 채 성급하게 표명해 평지풍파만 일으킨 셈이 아닐까.

김택환 미디어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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