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무엇을 하고있나|개인회사 고문 맡아 넉넉한 생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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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독립을 위해 하나로 뭉쳐야한다는 것이 아버님이 돌아가실 때 동지들에게 남긴 마지막 부탁이었습니다. 공동의 큰 목적을 위해 작은 나를 희생하는 정신을 우리집 가훈으로 삼고있어요.』
서울시흥동 한양아파트 7동306호-. 상해임시정부의 제2대 대통령이자 저명한 민족사가, 개화기 지도적 언론인의 한사람이었던 백엄 박은직 선생의 외아들 박시창 옹(79·전광복회회장·예비역육군소장)은 고희를 넘기고도 정정한 모습이다.
『내 평생 우리 아버지처럼 겸손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시창 옹.
그래서 인맥과 분파가 복잡하던 상해독립운동가 사회에서 적이 없었고 이박사의 후임으로 제2대 대통령에 추대된 것이라고 아버지의 인품을 회고한다.
백암은 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 등의 주필로 애국사상을 고취시켰고 3·1운동 후에는 러시아에서 애국노인단을 조직. 독립사상을 일깨웠다.
그는 독립운동가로 틈틈이 책을 펴내 「건국지」 「한국통사」 「안중근상」 「한국독립운동지혈사」 등 역사와 독립운동사에 관한 저서를 많이 남겼다.
1남1녀중 외아들 시창 옹의 누님 영애할머니가 올해 89세로 서울동대문구에 생존해 있다.
외아들 윤진해씨 (65·광산업) 아래 손자가 8남매, 살림도 유족한 편.
시창 옹은 자녀가 2남4여. 장남 유철씨(44) 는 미MIT서 경영학을 공부한 석사로 현재 건설부 해외국지역 3과장으로 있다. 시창 옹과 같은 평수 (32평)의 한아파트 위층에서 살며 노부모를 모신다. 장녀 유숙씨(43) 는 서울 독산동에 거주. 2남 유종씨(41· 철도회사원), 2여 유순씨(39· 의사와 결혼), 3여 유실씨(36·사업가와 결혼), 4여 유성씨(28·교수부인) 등 4명은 모두 미국에 살고 있다. 장남 유철씨가 미국에 있는 동안 한명씩 데려가 미국서 공부하다 눌러 살게된 것. 유철씨의 2남1여 등 시창 옹의 손자는 11명.
남은 소원은 독립을 보지 못하고 1925년 상해서 별세, 외국인묘지에 묻힌 아버지 백암의 유해를 모셔오는 것과 하루빨리 통일돼 고향인 황해도 황주를 찾아보는 것.
백암에게는 건국공로훈장 복장(복장)이 수여됐고 시창 옹 자신도 단장(단장)을 받았다. 망명한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 건너가 황보군관학교를 졸업한 후 23년을 중국군에 복무하며(최종계급 대령) 항일전에 참전한 공로다.
월 20만원의 연금과 고문으로 있는 대동중공업에서 주는 30만원 등 월50만원의 수입으로 두양주 생활에는 부족함이 없다. <문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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