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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을수록 기백 있게 살아야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1908년 서울생 ▲33년 경성제대법문학부 졸업 ▲56년 서울대 문학박사 ▲62년 대한산악연맹회장 ▲71년 서울대 대학원장 ▲현 정신문화원부원장 겸 한국학대학원장
요즘 너무 「젊은 세대」를 자주 내세우는 바람에 늙은 우리쯤은 아예 눈이나 감고 한구석에 조용히 도사리고 앉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자식들을 길러 놓으면 우리가 지나치게 신경과민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눈치가 보인다니 이래가지고 서는 노인들이 「소외」라는 용어로 그 심정을 도저히 그려내기 어려울 것이다.
느티나무 밑의 장기판을 중심으로 쓰디쓴 담뱃대를 빨면서,
『야! 이 사람, 그 상 죽어…』 하고 시비를 벌이는 장면도 애교라면 애교랄 수 있겠으나, 소일거리가 없어 보이니 어딘지 서글픈 모습같이 보인다고 요새 신문을 보면 정부도 국장급을 40대로 낮추어간다느니 하는 노인푸대접에 우리 같은 늙은이의 설 땅이 과연 어디인지 생각만 해도 답답해진다.
이웃나라 일본에선 노인의 재취직이 큰 사회문제가 되었다고 하는데 최근 일본을 다녀온 한 친구가 일본에서는 다음과 같은 민요가 나돈다고 소개를 해주었다. 듣고 보니 부럽기도 하고 그곳 노인의 기상은 볼만하다.
『30, 40은 코흘리개 애송이. 50, 60은 철이나 날까 말까, 70, 80은 부지런히 일할때 라 90엔 저승사자, 백살에 만나자고 믿어나 두어라.』
이 민요를 음미해보니 새삼 기운이 나는 것 같다. 나는 지금 방학도 없이 정신문화연구원의 대학원장으로 매일 출근을 하고 있는데 일을 하면서 생각해보니 「70, 80은 부지런히 일할 때」라는 것이 더욱 실감이 난다.
재작년 일본 동경에 갔을때의 일이다. 그곳 대사관에서 미리 연락해 놓은 것이겠지만 마침 일본의 학사원의 초대를 받았다. 그 학사원은 상야공원, 나무에 둘러싸인 아늑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초대받은 당일 약속시간보다 조금 앞서 과장이 먼저 찾아와서 내 출발준비를 서둘렀다.
『준비가 다 되셨는지 해서 왔습니다』고 말하고 있는 중 곧 뒤이어 언어학의 복부박사가 와서 나를 안내했다. 정말 정중한 초대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원장은 기상학대가인노학자였는데 나를 맞기 위해 일부러 나와 앉아있어 매우 고마왔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학사원은 연령에서 80대가 중심이고 70대와 90대가 비슷한 수로 나머지를 채우고 있었다. 일본이 이렇게 장수의 나라인가 깨닫고 놀랐다.
그야 처음 듣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동경대학의 중국철학전공인 자야철인 교수는 백살에 작고했다고 하는데 어느 해엔가 일본에 가서 지기의 학자가 모여 이야기를 하는데 『자야선생 99세 장수의 연을 하고 왔지요』라는 것이다.
나는「99」란 소리에 정말 놀랐다. 그들이 그수연을 「백옹의 연」이라 하기에 그이유를 물어 보았더니 그해석이 정말 일본인 다왔다.
『글쎄요, 「백」 자에서 한 획을 빼어 보세요. 「백」자가 남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백옹의 연」이라고 한거지요.』 그런데 우리 학술원은 70까지가 제한연령이니 어딘가 사고의 출발부터가 다른 것 같다. 나는 다행히 원로회원으로 대우를 받고 있으니 고맙기 짝이 없지만 내지기인 어느 박사는 지난 6월이, 만70이라서 자격상실이 되었다는 사무당국의 이야기다. 또 바로 연하의 몇몇도 연이어 자격상실이 될 터이니 어딘가 토정비결로만 들린 것은 아닌가싶다.
나는 회갑을 맞거나 정년퇴직을 하게된 후배들과 만나면 이렇게 이야기한다.
『회갑을 치렀다지. 인제 사람 구실하게된거야. 조금 세상의 이치가 보일 걸』, 『자네도 정년퇴직이라지. 인제 정말 인간수련의 고비를 넘어선 거야, 축하하네.』
이렇게 쾌기염을 토하는 것이다. 한번은 아들애가 와서 나를 아파트로 유도하려고 했다. 나는 대뜸 화를 내었다.
『옛날에는 부모가 중태에 이르면 병원에 있다가도 집 안방으로 모셔다가 임종을 시킨다.
그런데 요즈음엔 아파트에서 부모가 중태에 빠지면 병원의 응급실로 옮긴다지. 그리고 거기서 숨을 거두게하고 시체실인지 냉장고에 얼게 놔두었다가 옆의 영결식장에서 간단히 식인지 무언지하고 묻으러 간다지. 난 아파트는 아니갈테다.』
그야 그럴 수밖에. 아파트에서 죽으면 관을 내려올 수가 없어 크레인으로 스카이다이빙을 시킨다니 정말 딱한 이야기다. 어느 친구가
『그 자 평시엔 겁장이인데 죽어서 스카이다이빙으로 아파트를 내려오니 이상한 세상이 되었어….』
나는 다행스럽게도 건강을 누릴대로 누리고 있어 연구생활은 조금도 후회하지 않고 논문을 쓰고있다.
최근 외도와 같은 연구였지만 자연보호의 역사에 속한 과제로 「이조송정사」를 거의 3백장의 논문으로 끊고, 학술원 논문집에 싣게 한 것이다. 나는 과욕의 학도이어서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죽는날까지 학문상 큰소리를 치고 가련다. 세상이 아무리 노인을 박대한들 노인도 다 거치는 과정은 아니려니, 어디 두고 보자고 벼르고 싶다.
그러나 사람이란 건강하게 살고 그것도 오래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살아서 해야 할일을 끝낼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서다. 큰일이란, 특히 학문에서는 정리할수 있고 결론을 낼수 있는 시간이란 늙어서가 아닌가 한다. 나는 내 인생의 끝장을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다. 누가 감히 늙었다고 나를 허술히 하랴. 늙을수록 기백에 살아야 함이 내 근자의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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