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신공황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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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일본의 최고사서인 『고쟁기』나 『일본서기』 틀 보면 이른바 『신권정벌』 얘기가 몇 차례 나온다. 최초의 정벌은 서기 200년(중애천고 9년)이었고, 두 번째는 그 후 반세기만인 249년-. 물론그후에도 10차례나 언급되어 있다. 이른바 신공황후 이후의 일이다.
엊그제 일본 「소노다」 외상이『신공황후 이전엔 한국이 일본을 괴롭혔다』 운운한 말의 뿌리도 이 두개 고문헌에 있다.
하필이면 「소노다 외상이 아득한 신화시대를 왜 거론했는지에 대한 우리의 당혹은 앞서 이 자리에서 얘기한바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칠 일이 아니다. 『고쟁기』나 『일목서기』라는 사서 자체에 대해서도 적절한 해명이 있어야할 것 같다.
『고서기』 는 712년 신전아빈가 암송하고있던 고기녹을 태안만려(오오느아스마로)가 한자를 빌어 적은 문헌이다.
상권은 주로 신화를, 중권과 하권은 이른바 신무천황에서부터 33대에 걸쳐 기록했다.
『일본서기』 는 『고서기』 가 나온 8년 뒤인 720년 합인친왕이 찬 했다. 분량 면에서 기를 훨씬 능가하며 체재도 편년체, 문장도 미숙하나마 한문이다. 총30권 중 첫2권은 신화부분인 신대, 3권 이하는 신무에서 41대지통까지의 천황들을 배열했다.
우선「만세일통」의 천황가문을 자랑하기 위해 5세기에 벌써 기내대화지방을 중심으로 일본전국을 통일한 정권인양 서술하고 있다. 일본학자들은 이것부터 논쟁의 대상으로 삼고있다.
특히『일본서기』는 본질적으로 우리민족, 문화를 모욕하고 멸시하는 서술이 면면에 강렬하게 노출되어 있다.
문제는 이 문헌의 학문적 가치다. 근년의 일본 사학 계는 이 책들에 대해 우선 당시의 문거이 천황에 통합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개찬(개찬)했다고 주장하고있다.
또 하나는 환무천고(781∼805연)에 우리나라 관계의 제기녹을 태워버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 때 재(회)가 된 기녹 중에는 『일본황실의 신선은 백제인 이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점에선「소노다」외상이 제대로 역사공부를 한 셈이다. 그들의 고대사는 백제의 영향 속에 있었다는 것을 그 발언의 항문에서 읽을 수 있다.
아뭏든 일목의 역사위조사업은 서기834년 이후에도 천황이나 황실주의자들의 비위에 맞추어 이른바 「명치」,「대정」, 지금의「소화」시대에까지 계속되고 있다. 어떤 사학자는 「일본제국주의자」는『세계 일등급의 역사위작자』라고까지 말하고있다.
「신권정벌 설만해도 그것이 사실과 어긋나는 기록들은 한 두 군데가 아니다.
그 무렵 일본에는 조선이 왕민계통 소국, 이른바 소신나·소백제·소고구려· 소가나 등이 있었는데, 바로 이들을 한반도에 자리잡은 신권·백제 등과 혼동을 한 것이다.
「소신권의 정벌」과「신권의 정벌」을 구별하지 못한 것이다. 이 부분은 우리 국내학자들의 연구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고서기』나 『일본서기』에 관한 여기의 논거들은 객도생을 존중하는 뜻에서 모두 일본학자들의. 주장을 따른 것이다.
이젠「소노다」외상발언의 진상이 다소나마 이해되었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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