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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게임과 영화가 만났을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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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전해주는 카드의 명언 “내 일생 일대의 행운은 도박에서 이 배의 티켓을 타낸거야. 당신을 만났으니까.”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부둣가 포커 게임에서 이겨 타이타닉호 승선권을 딴다. 잭이 부둣가에서 풀하우스를 잡지 않았다면 빙산이 떠다니는 차가운 어둠으로 가라앉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장의 카드는 그에게 북해의 차가움과 정열의 사랑을 동시에 안겨줬다. 잭은 풀하우스를 잡았다. ‘투페어에서 풀하우스 뜨기 바라는 놈한테는 딸도 주지 말아라’는 그 세계의 명언이 있다. 투페어를 쥔 사람 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히든카드, 그래서 풀하우스는 악마의 유혹이다. 당신은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등학교 여자 후배와 결혼해 알콩달콩 살면서 ‘내집마련의 꿈’을 조금씩 이뤄가고 있다. 마침 싸게 나온 좋은 땅을 매입해 직접 전원 주택을 짓기로 했다. 비록 은행 융자를 얻었지만 열심히 벌어 갚으면 된다. 여기까지가 동화고 다음은 현실이다. IMF이후 최대의 불경기가 닥치면서 두 사람은 은행 융자금도 갚지 못하고, 어쩌다 돌파구로 생각했던 도박에서도 돈을 잃고 만다. 이제 선택은 분명하다. 신용불량의 늪에 빠지던가, 아니면 일확천금으로 재기에 성공하던가. 당신은 부인의 손을 잡고 정선 카지노로 향한다. 카지노는 그리 녹녹치 않은 곳이다. 즐기기 위해 들어갔다면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공간이지만 희망을 품고 들어가면 절망을 안고 나오는 곳이다. 당신의 부인은 모든 돈을 잃고 낙담하는데 그녀에게 반한 재벌2세가 접근한다. 재벌2세는 당신 부인에게 ‘10억짜리 하룻밤’을 제안하고 흔들리는 부인은 당신에게 물어본다. 당신도 얼떨결에 승낙하고 만다. 게임은 인생을 즐기는 도구이지 인생을 거는 도박이 아니다. 필요한 돈을 그것에 쓰지 말고, 또한 그것을 통해 필요한 돈을 만들려 하지 말 것. 또 하나의 불문율이다. <모래시계>를 통해 카지노의 어두운 면을 보았다면 와 <올인>은 많은 사람에게 환상을 주었다. 실제 프로 도박사 차민수씨를 모델로 했다 하여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드라마는 그의 삶보다 훨씬 단조로운 것이었다는 뒷소문이 들린다. 어떤 인생을 살았기에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을까. 영화 <라운더스>는 프로게이머의 삶에 대한 드라마의 전형을 보여준다. 포커를 치다 등록금을 다 잃은 법대생 마이크는 어찌하던 포커를 통해 잃은 돈을 회수하려 한다. 그럴수록 점점 궁지에 몰리게 되는데, 결국 그는 문제는 돈이 아니라 카드게임의 스릴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난 카드를 잡으면 살아있다는 것을 느껴.’ 그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길은 안정된 변호사가 아닌 긴장과 스릴을 즐기는 도박사임을 알게 된다. 라스베가스로 떠나는 그의 뒷모습에서 우리는 포커의 진정한 매력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된다. 얼마를 따고 얼마를 잃었는지 계산하지 말고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계산해야 된다. 우리가 카드를 들고 있는 그 시간도 스스로의 인생을 살아가는 시간이니 말이다. 쳇! 이것도 카드 영화냐? 그렇다. 톰크루즈는 ‘자폐증에 걸린 형’ 이라는 최고의 히든 카드를 얻었다. 그 히든카드는 고집불통이고 바보스럽고 무서움도 잘 타지만 뛰어난 계산 능력으로 잠깐 보이는 카드게임 장면에서 백전전승의 놀라운 승률을 보여준다. 자폐증에 빠진 형을 도구로 수단화 할 때도 그렇지만 결국 ‘가족’을 느낄 대도 그는 보석 같은 존재다. 살면서 그런 히든 카드를 받아본다면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각설하고, 카드는 확률이고 계산을 잘하는 사람이 승률이 높다. 테이블에 세 장의 카드가 오픈 됐을 때, 남은 한 장의 카드가 나에게 들어올 확률은? 50%다. 들어오거니 혹은 안들어오거나.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은? 50%다. 되거나 혹은 안되거나. 이런 단세포적인 계산 감각으로는 백날 포커 테이블에 앉아봐야 이 사람이 이길 확률은? 역시 50%? 하지만 때때로 확률은 무너진다. 그것이 진정 카드 게임의 묘미이고 스릴이다. 속고 속이는 영화의 대명사가 <스팅>이라면 꼬고 또 꼬는 영화의 대명사는 단연 <록스탁앤투스모킹베럴즈>. 제목 만으로도 무슨 영화인지 감 잡기가 힘들고, 막상 봐도 누가 누군지, 쟤가 왜 그러는지 집중하지 않으면 헷갈리는 영화다. 복잡하면서도 탄탄한 연결 고리를 가진 가이리치의 영화는 그 구조가 카드 게임과 많이 닮아있다. 등장 인물이 많을수록 드라마는 다양해지고 최후의 승자는 점치기가 어려워진다. 등장 선수가 많을수록 패는 다양해지고 위너를 가리기가 힘들어진다. 평생에 한 번 잡기 힘들다는 로얄스트레이트플러쉬는 올인을 하라는 하늘의 계시, 하지만 스페이드-다이아몬드-하트-클로버로 이어지는 순서가 있는 한 로.티.플을 쥐고 우승할 수 있는 상대적 확률은 25%에 불과하다. 하지만 내 패가 가장 약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레이스의 주도권을 뺏기게 된다. 내가 ‘강패’를 쥐었다 생각하는 순간 헤게모니를 잡는다. 자신감은 표정에서 나오고 행동으로 완성된다. 그러나 끝까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또 다른 강자가 숨죽이며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강호의 세계가 포커의 세계와 다를 것이 어디 있겠는가. 장대한 어드벤쳐 드라마가 골격을 이루는 세계인데. 지난날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카지노 영화는 <지존무상>으로 꽃을 피우고 <도신>으로 번성하여 <도성>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포커 영화의 선구자인 이들 영화를 이어 무수히 많은 도신 시리즈, 도성 시리즈, 지존 시리즈가 탄생됐다. 서로간에 구분은 어렵지만 내용은 비슷한 영화들, 하지만 ‘청출어람’은 간 데 없고 ‘형만한 아우 없다’는 말만 확인하게 되었다. 포커를 소재로 헐리웃이 굵직하고 색깔있는 영화를 만들어내는데 반해 홍콩영화는 복제생산에만 급급해 자멸의 길을 걸었다. 한때 화려했던 영광의 뒤안길에서 자존심을 건 특급 프로젝트 <도신귀환 뉴포커>는 그래서 더욱 기대가 되는 작품이다. <도신> 주윤발이 전하던 메시지, 권선징악 일수도 있고 神한테 덤비면 혼난다는 얘기일 수도 있으나 깔끔하고 단순해 명쾌했던 재미를 다시 한 번 느끼고 싶다. <도성> 주윤발이 보여주었던 너무나 인간적인 영능력자의 모습, 기분에 따라 초능력이 통했다 안통했다 반복되는 황당한 재미를 또 한 번 보고싶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들이 적토마를 타고 한꺼번에 달려오는 느낌이다. 그들이 <도신귀환 뉴포커>에서 카드 게임계에 영원히 남을 명장면 명대사를 날려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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