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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에 좋은가 아리송한 심인성질환많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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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울 반포동 H아파트에 사는 주부 이옥림씨(35)는 지난해 여름부터 이유없이 피곤하고 두통이 나며 권태감을 느껴 일상생활에 의욕을 잃고 있다. 그 뿐만아니라 소화가 안되고 식욕도 없다.
이씨는 인근 병원에서 종합검진을 했더니 약간의 위염증세가 있고 신경이 날카로워 졌다는 진단이 나왔을 뿐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심리적 압박 때문
서울 여의도동 M아파트의 주부 박영애씨(33)는 지난봄부터 조금만 충격을 받아도 가슴이 마구 뛰고 현기증을 느꼈으며 소변이 자주 마렵기도 했다. 박씨는 중병에 걸린 줄 알고 종합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으나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담당의사는 심리적인 압박과 욕구불만 때문이니 취미에 몰두하거나 운동을 하라고 권하기에 요즈음 서예와 줄넘기에 열중해 이같은 증세가 많이 가셨다.
내과전문의들은 아파트에 사는30∼40대 주부들에게 많은 이같은 증세는 대부분 특별한 질병 때문이 아니라 정신적인 압박감등이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한정되고 폐쇄된 생활공간에서 오는 욕구불만이 한 원인이 될 수도 있으므로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취미생활과 운동등으로 기분전환을 하는게 좋다는 것.
도시의 인구과밀로 생겨난 새로운 주거형태인 아파트 단지-.
아파트족 또는 단지족으로까지 불리는 아파트 주민들도 생활의 편리함 때문에 아파트생활에 매력을 느끼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아파트병」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병을 앓고 있다.
환자들의 대부분이 아파트 주민인 강남성모병원 내과 김부성 박사는 『강남지역의 아파트주민들은 대부분 중산층 이상으로 생활이 안정되고 학력도 높아 얼른 보기에 생활에 별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병원에 오는 환자들을 보면 이유가 뚜렷하지 않은 심인성 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아 일반주택 지역의 환자들과는 상당히 다른 질병 패턴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강남성모병원에서 김박사가 진료한 이들 심인성 환자들의 주요증세는 ▲소화가 안되고 복부에 팽만감이 있거나 아랫배가 아프고 설사와 변비가 교대로 나타나는 위장 및 대장장애 ▲피로감·두통·불면증·신경질등 정신신경증세 ▲아랫배가 뻐근하고 소변이 자주 마려우며 소변을 보고나도 시원치 않은 방광염 비슷한 증세등으로 대별되고 있다.
경쟁의식도 한몫
이같은 증세가 나타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김박사는 ▲아파트 거주자들은 사회참여의식과 활동력이 강한 30∼40대가 주류나 아파트 공간이 폐쇄적·한정적이어서 단절감을 느끼고 ▲이웃간의 경쟁의식이 강하고 이에 따라 욕구불만도 커지며 ▲대체로 아파트 지역이 차량등의 소음이 심하고 ▲안정된 생활에서 권태감을 느끼거나 반대로 가정부도 없이 가사·육아등을 빈틈없이 꾸려가려는 핵가족 주부의 과로등이 원인인 것으로 지적했다.
이중 아파트의 소음공해는 주민들의 심신을 좀먹는 가장 큰 요인의 하나로 지적하고 있다.
차량들의 소음이 심한 반포동 K아파트에 사는 주부 조모씨(32)는 『창문을 열어놓는 여름철이 되면 주부들은 하루종일 소음에 시달리고 거기에다 밤잠까지 설치게 되면 거의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고 만성피로에 시달린다』고 호소했다.
이같은 소음공해는 신반포 일부지역, 서초동의 도로변지역, 여의도·당산동의 강변도로변 지역등이 비교적 심하나 다른 아파트 지역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상당한 소음공해에 시달리고있다.
반포동 오내과의원의 오영원장은 『고속버스터미널 쪽이나 강변도로등 큰길쪽의 아파트에 사는 환자들이 다른 환자들보다 훨씬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신경질적이며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이들 아파트 지역의 주민과 의사들은 정부가 방음벽을 세우거나 차량을 통제해 소음·매연공해로부터 시민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의도동 G아파트의 최모군(10)은 부모의 허락 없이는 집밖으로 단한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허약한 어린이. 친구들과 놀이터에 가거나 이웃동에 갈 때는 어머니의 허락을 얻지 않으면 혼이나는 것으로 돼있다. 이웃마을로 원정 가거나 미지의 세계로 탐험을 감행하는 시골어린이들과는 퍽 대조적이다. 부모의 과잉보호는 어린이들을 이처럼 허약하게 만든다.
아파트 주민에게 많은 또 한가지 질병은 호흡기질환자. 실내가 건조하기 때문에 특히 어린이 호흡기 질병이 많아 주의를 요한다.
서울 서초동 황소아과원장 황수영씨는 『어린이 환자의 80% 이상은 감기 등 호흡기질환으로 최근에 더욱 늘고있다』며 실내에 젖은 수건 등을 항상 걸어놓도록 권고했다.
아파트 주부들은 신체가 허약하고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약한 경우가 많다. 운동량이 적고 외부에 대한 충격에 약하기 때문. 이 때문에 최근에는 조깅·테니스등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고층일수록 "불안"
미국의 한 조사에서는 고층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낮은 층에 사는 사람들보다 정서적으로 불안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층 아파트 주민들의 심리적 불안을 덜기 위해서는 복도를 넓게 설계하고 복도에 창문을 설치하는등 안전시설을 의무화 해야한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아파트 생활에도 장점은 많다.
주택구조가 편리하게 돼있어 생활에 큰 도움이 되고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중산층 이하 아파트의 경우 최근 들어 이웃간의 교류도 활발해 이웃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서로 돕기도 한다. 마당이 없다고는 하지만 아파트 광장과 놀이터에서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어놀수 있고, 휴일이면 주민들이 밖으로 쏟아져나와 모르던 이웃끼리 대화를 나누고 공동체 의식을 높일 수도 있다.
주택이 부족한 우리의 현실에서 이 같은 아파트의 강점을 살려 좋은 주거지로 개발시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김광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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