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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안 개구리」는 면했다지만…|김영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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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계란을 깨는 아픔」이 주는 교훈-. 난생 첫 해외나들이가 주마간산(주마간산)식의 짧은 일경에 쫓겨 천연색기록영화를 본 것처럼 끝나 버렸지만「우물안 개구리」임을 일깨워 준 갖가지 체험은 값진 것이었다.
운 좋게도 돈걱정 없이 문교부가 뽑은 전국16개 대학 학생대표팀에 끼여 서독의 6개 도시와 런던·파리를 돌며 역사와 현실을 받아들이기에 바빴다.
본 대학·함부르크대학·베를린대학에서 독일대학생들과의 대화를 통해 영욕이 엇갈리는 역사, 분단국이 주는 뼈저린 현실을 피부로 느꼈다.
베를린대학의 한 남학생은『동서독은 이념의 차이도 차이지만 분단이후 너무나 다른 문화적 양상이 전개되었기 때문에 통일이 되더라도 화합이 어려울 것 같다』는 비관적 견해를 털어놓아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본 대학에서 남학생들 틈에 끼여 토론에 열올리는 여학생들의 태도가 너무 당당하고 긴지해 관광분위기에 젖어 있던 연수생들에게 면학의 자세를 일깨워 주었다.
10일 동안 부지런하고 창의력이 풍부한 이 나라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2차대전후 독일의 부흥이 결코「기적」이 아님을 실감했다.
언어의 장벽, 유색인종에 대한차별, 경제여건 등 많은 어려움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한국유학생들을 만나면서 유학에 대한 환상도 잊어버렸다.
16명의 학생이 각자 흩어져 하루씩 독일인 가정에서 민박한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간호원출신의 한국여인이 부인인 가정에서 한국인이면서도 독일인의 입장에서 한국을 보는 그녀의 태도, 쌀쌀한 말투에 큰 충격을 받았다.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냉담하게 만들었는지 곰곰 생각해 보아야 했다.
런던과 파리에서는 방학중이어서 대학생들을 만날 수 없어 아쉬웠으나 옥스퍼드대학생들이 1주일에 5백 페이지에 달하는 리포트를 낸다는 안내자의 말에는 등골이 서늘했다.
올 여름방학에 봇물 터진 듯한 대학생해외연수바람이 일부부유층학생들의 관광여행이라는 비난도 있지만 여행에서 얻는 교훈도 결코 적지 않다.
문제는 대학생연수가 가진 학생들의 독점 물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수해도 돈이 없어 외국에 못 나가는 많은 학생들이 외국에 나가 흥청대는 동급생들을 보고 느끼게 될 위화감은 사회에서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덧붙여 얘기하고 싶다.
▲1960년 생
▲이화여대 외국어교육과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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