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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의 스트레스 클리닉] 음식으로 기분 푼다는 29세 박사 과정 여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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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스트레스 받을 때 먹으면 지방으로 축적

Q (박사과정 밟는 29세 미혼 여성) 스트레스 받으면 너무 먹어 고민입니다. 제 지도교수가 유명한 까칠맨인데요. 아무리 까칠해도 전공 분야 권위자라 기꺼이 지원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일주일에 반은 내 무능을 탓하며 눈물, 나머지 반은 내 어리석은 선택에 대한 분노로 보내고 있습니다. 속상한 마음이 커질수록 과자 봉지와 체중이 늘어만 갑니다. 추석 때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고향인 대전에 갔는데 “공부는 언제 끝나냐” “남자 친구 없냐” “빨리 사위 보고 싶다”는 부모님 성화가 스트레스만 더 받았습니다. 게다가 병 주고 약 주려는 건지 솜씨 좋은 엄마가 잔소리 후에 맛있는 음식을 끊임없이 주니, 전 또 이걸 먹으며 스트레스를 풉니다. 체중계 올라가기 무서워 재보진 않았지만 2kg은 더 찐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 받을 때 먹으면 살이 더 찌는 것 같아요. 정말 그런 건가요.

A (최근 학계 트렌드에 밝은 윤교수)너무 바빠 뇌가 지쳤을 때나 인간관계로 짜증나면 계속 먹고 싶은, 아니 음식을 흡입하고픈 욕구가 뇌에서 요동칩니다. 스트레스가 식욕 중추를 건드려 식욕을 증가시키기 때문입니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 쾌감이 온다는 걸 뇌는 경험상 알고 있기에 피곤하거나 짜증나면 먹을 때 발생하는 쾌감으로 부정적 감정을 내몰려고 하는 거죠. 다시 말해 음식을 항우울제로 사용하는 것인데, 문제는 과도한 칼로리 섭취로 체중이 는다는 겁니다.

 더 속상한 건 스트레스 받을 때 먹으면 살이 더 찐다는 겁니다. 최근 미 오하이오 주립대는 여성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수준과 칼로리 연소와의 관계를 연구했는데, 실험에 앞서 24시간 동안 스트레스에 노출된 여성의 칼로리 연소량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평균 104칼로리가 더 적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년으로 환산하면 몸무게가 5kg이나 증가한 수치로, 2년만 열 받을 때마다 먹으면 10kg이 더 늘어난다는 얘기입니다.

 뇌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현재를 위기 상황으로 인식해 에너지를 지방으로 더 많이 축적하기 때문입니다. 열 받은 뇌는 전투를 준비하기 위해 에너지 소비는 줄이고 배에 지방을 축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트레스 받아 뭔가 먹고 싶다면 칼로리 적은 나만의 무기를 써야 합니다. 예컨대 오이 같은 것 말입니다. 아드득 깨물어 먹으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입니다. 유치하기도 하고, 맛도 별로라고요. 그래도 복부비만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02 스트레스, 피부를 공격

Q 오이랑 당근을 한 박스 사야겠네요. 궁금한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피부도 상하게 만드나요. 원래 피부미인이었는데 최근 피부까지 상하니 정말 우울증이라도 올 것 같아요. 전에 다니던 피부과에 짬을 내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깜짝 놀라더군요. 얼굴이 왜 이리 상했느냐면서요. 관리를 받았는데도 원래 피부로 돌아오지 않아요. 스트레스가 피부에 직접적으로 안 좋은 영향을 끼치나요.

A 피부를 만지면 야들야들해서 연약할 것 같지만 사실 우리 몸의 최전방 부대입니다. 휴전선을 지키는 최전방 GOP부대인 셈이죠. 그래서 위기관리를 하는 스트레스 시스템이 매우 발달해 있습니다. 스트레스 시스템의 중추는 뇌에 있고, 호르몬·면역·신경계를 통해 우리 몸의 여러 위기 상황에 대처합니다. 피부도 스트레스 중추의 지시를 받는데, 특이하게도 피부는 독자적인 위기 방어 시스템도 갖고 있습니다. 피부 안에서만 따로 작동하는 스트레스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스트레스 영향을 그만큼 많이 받는 셈이죠.

 우울증이나 불안증 환자 증세가 호전되면 3~5년쯤 젊어보입니다. 이처럼 얼굴의 피부는 마음의 상태를 즉각적으로 반영합니다. 거꾸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단 자신도 모르는 새 얼굴을 찡그리게 됩니다. 스트레스 주름이 생기는 거죠. 그럼 몇 년은 늙어 보입니다.

 이미 오래전 연구에서 스트레스가 미간 주름을 증가시킨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주름 정도가 아니라 심한 피부병이 오기도 합니다. 한 30대 여성이 과거 남자 친구로부터 협박당한 스트레스로 온 적이 있는데 피부가 오래도록 아토피를 앓은 것 같더군요. 협박문제를 해결하고 마음의 안정도 되찾은 후에도 피부가 완전히 나아지진 않았습니다. 마음의 스트레스가 피부에까지 상처를 낸 셈입니다.

 이처럼 스트레스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과다 분비하게 하고 면역 인자에 불균형을 일으켜 피부의 방어 능력을 약하게 합니다. 피부병을 발생시킬 뿐 아니라 기존의 피부병도 더 악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03 다이어트 스트레스 vs 스트레스 다(all)이트(eat)

Q 살이 찌다보니 다이어트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습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지금 같이 사는 고향 언니보다 훨씬 더 날씬 했는데 지금은 완전히 역전됐습니다. 뚱뚱해진 저와 달리 언니는 무섭게 다이어트를 하더니 7kg 이나 감량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체중감량으로 남부러울 게 없겠다 싶은 언니가 전보다 더 심하게 짜증을 낸다는 겁니다. 지도교수도 까칠한데 집에 오면 언니까지 짜증을 내니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아요. 어쩔 땐 언니가 다이어트 강박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여 딱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왜 날씬해졌는데 짜증이 늘어난 건가요.

A 날씬한 사람들에게 비법을 물었을 때 “먹어도 안 찌는 체질”이라는 답이 돌아오면 정말 얄밉죠. 그만큼 다이어트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성은 물론 남성도 늘 다이어트 생각이 머리를 맴돕니다. 멋진 몸매를 위해, 또 건강을 위해 체중관리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이어트에 성공한 사람을 보면 일단 부럽습니다.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데 의외로 다이어트 성공이 심리적 스트레스를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런던 칼리지 대학(University College London)에서 50세 이상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체중 감량한 성공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슬픔과 외로움·무기력감·정서불안을 두 배 가까이 더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울증도 더 흔하게 나타났고요. 먹고 싶은 걸 참는 다이어트가 상당한 심리적 스트레스를 줬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몸에 지방이 많다고 행복해 지는 건 아닙니다. 비만은 분명 우울의 위험 요인이기도 합니다. 체중이 많이 나간다고 더 행복하진 않지만 지나친 다이어트 역시 정신적으로 해롭다는 거죠.

 해결책은 체중 감량에 대한 다이어트 강박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배가 좀 나와도 삶의 여유라 여기고 예쁘게 봐줍시다. 사실 체중 감량 의지가 너무 강하면 그 자체가 스트레스입니다. 또 감량에 실패하면 반작용으로 의지가 제로 상태가 돼 더 먹고 운동은 전혀 안 하게 됩니다.

 몸무게가 늘든 줄든 꾸준히 건강을 챙기는 행동을 하는 게 정답입니다. 좀 통통해도 꾸준히 운동하고 균형 잡힌 식생활을 하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다이어트 강박에 사로잡혀 너무 거칠게 나를 몰아세우는 것 보다는요.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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