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세 도와주는 「자료상」 번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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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동강물을 팔아먹었다는 봉이 김선달은 그래도 국가재정을 축내지는 앉았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불로소득의 횡재를 했을 뿐이다. 그런데 가짜 세금계산서를 중개·공급하는 자료상은 탈세와 범법을 조장하고 국가재정을 좀 먹기 때문에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라고 보아 넘기기엔 너무나 악질적이다. 탈세를 조장한 다음 그 커미션으로 먹고사는 독버섯형 신종기업이다. 자료상이라는 탈세조장기업은 최근들어 부쩍 늘어 성업중이다.
위장음성거래를 하고 수법도 지능화되어 잡아내기가 좀체로 어렵다.
국세청이 자료상의 행태에 대해 주시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부터다.
올 들어서 국세청은 두차례의 집중단속을 실시한 결과 32개 자료상이 무려 3백42억원 어치의 가짜 세금계산서를 중개· 공급했고 이들과 거래한 2천여 업체를 밝혀냈다.
자료상은 그야말로 돈 안들이고 돈을 버는 수법에서는 봉이 김선달이나 마찬가지다.
시장·강가 또는 번화가의 뒷골목 허름한 빌딩에 사무실을 임대한 다음 전화 1∼2대, 그리고 여사무원 1∼2명을 채용한 것이 투자의 전부다.
세금계산서를 필요로 하는 곳과 세금계산서가 남아 돌아가는 곳을 연락해서 중간에서 중개, 공급해주고 외형의 2∼3%를 커미션 조로 양쪽에서 받는다.
대체로 부가세 특혜과세자들은 일반 과세자로 넘어가지 않으려고 계속 외형을 숨기려는 경향이 있고 영세제조업자·일부도매상 및 소매상들은 외형 노출을 꺼려 세금계산서를 받아가지 않고 발급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대신 일용노무자를 많이 쓰고 잡지출이 많은 건설업체 같은데서는 세금계산서가 필요하다.
세금계산서가 있어야 매입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료상들과 거래가 많은 업종은 사류·직물류·화공과품·건축자재도소매업. 국세청이 적발해낸 자료상의 유형을 보면,
◇미주상사 한국지점 (대표 서량수)의 경우=매입 세금계산서는 섬유·선박 등으로 되어 있었는데 매출품목은 고철과 기계. 거래액은 80년 2기분, 81년 1기에 걸쳐 매입 5억7천8백60만원, 매출 5억6전7백만원.
이곳을 조사하다가 그의 형 서특주씨의 행적이 밝혀졌다.
서씨는 미국제원호처(뒤에 미국제상사로 바꿈)한국지점이라는 공적기관냄새가 풍기는 간판을 걸고 세무서원의 눈을 피해 자료상 영업을 했다.
80년도 거래액은 무려 매입 31억2천4백만원, 매출 40억4백만원등 71억 여원.
이들은 이미 여권을 발급 받았거나 수속 중이었는데 출국정지 조치시켰다.
◇우삼기업 (종로1가·대표 조복로)의 경우=제출한 자료를 정밀 대사해보니 매입은 녹용·녹각인데 매출은 베어링·화공약품.
눈을 속이기 위해 앞에 DH (사슴뿔의 약자) 라는 약자를 붙이기까지 했다.
적발된 거래금액은 앞의 서씨 규모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로 등록된 조씨는 나이가 많고 무재산가.
국세청은 실제 주인을 찾으려고 나섰으나 이미 도피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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